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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김 형사, 자네 고소당했네.”
과장한테 불려 갔다 온 반장이 김 형사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을 던지며 똥을 씹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천만 원이나 더 올려달라고 했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출근한 후 가뜩이나 심란한 심사를 혼자서 삭이고 있던 김 형사는 일그러지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아닌 밤중에 무슨 봉창 뜯는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험한 눈길로 반장을 쏘아보았다.
“좀 알아듣게 말씀하시죠?”
김 형사가 시비하듯 말했다.
“지난번에 할머니 자전거로 밀어버려 돌아가시게 한 녀석 있지? 그놈이 자네 정신학대로 고소했대.”
김 형사는 누군가 갑자기 등에 얼음물을 쏟아붓는 듯 머리카락이 서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뭐 뭐라고요? 무슨 학대라고요?”
한 달 전이었다. 길에 쓰러진 할머니를 지나가던 사람이 119에 신고해서 응급실로 갔지만 할머니는 숨을 거두었다. 부검 결과 등에 자전거 바퀴 자국이 있었고, 사인은 뇌출혈이었다. 주변 CCTV와 승용차의 블랙박스를 조사해서 범인을 잡았는데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김 형사는 그간 고생한 일과 너무 화가 나고, 분노로 몸이 떨려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최대한 자제심을 발휘해서 김혁진 학생과 마주 앉았다. 그놈은 히죽거리기만 할 뿐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차라리 긴장이라도 하고 무서운 듯한 태도라도 보이면 덜 화가 날 텐데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친구하고 놀러라도 온 듯한 태도를 보이며 히죽거리니 더는 참을 수 없어 악을 쓰듯 물었다.
“야! 이 새끼야,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웃음이 나오냐?”
“어이가 없네. 아저씨, 왜 악쓰고 욕해요? 나 심장 약해서 충격받고 쓰러지면 아저씨 곤란할 텐데요.”김 형사는 화가 나서 더는 그 아이와 말을 할 수가 없어 취조실에서 밖으로 나와 멍한 모습으로 문 앞에 장승처럼 서 있었다. 형사들이 돌아가며 신문을 해 보았지만 우진은 상대를 조롱하는 듯, 화를 돋우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으로 어리지만 악랄한 싸이코패스의 모습이었다.
“안 되겠어. 오늘은 돌려보내고 내일 다시 해 보지. 어린 놈한테 이렇게 무기력하게 손을 들 수밖에 없다니 기가 막히는군.”
반장이 자조적으로 말했다.
“내일 아침에 오라고 해서 조사해 보고 안 되면 심리 전문가 불러야 할 것 같아요.”
퇴근 후에 김 형사 일행은 어리고 영악한 작은 악당에게 무기력하게 당하는 자신들의 처지에 화가 나서 소주로 분풀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할머니 모르고 친 게 아니고 그냥 밀어버렸어요”
담담하게 말하는 혁진의 말과 태도에 김 형사는 기가 막혀 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새끼야 일부러 그랬다고?”
“욕하지 말라고 했지? 새끼야.”
김 형사가 기가 차서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일어섰다.
“너 같은 놈 아니 님은 정말 처음이다.”
“나 열세 살이야. 사람 죽여도 감옥 안 가.”
김 형사는 말문이 막혀 손가락이 떨렸다.
“너 참 똑똑하다. 그래 커서 뭐가 될래?”
“나 검사 될 거예요. 나 공부 일등이라고요.”
“그래? 왜 검사가 되고 싶은데?”
“검사 앞에서는 형사들 고양이 앞에 쥐처럼 행동하잖아요. 아저씨처럼 버릇없는 형사 하인처럼 데리고 놀면 재미있을 거 같아요.”김 형사는 더는 자제하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오메! 살다 살다 이런 새끼는 처음 보네!”
“욕하지 말라고 했지? 아저씨 고소할 거야? 우리 아빠 회사에 변호사 두 명 있어. 아저씨 가만 안 둘 거야.”
열세 살, 그 작은 악마가 기어이 고소한 것이다. 김 형사는 온몸이 자괴감에 휩싸이며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일어설 수 없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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