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호의 얼굴이 요즘 초췌하게 변해갔다. 이상했다. 몇 년이나 쫓아다니던 효린과 결혼한 지 일 년을 막 넘기고 있었다. 그토록 갈망하던 여자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준호의 얼굴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너 얼굴이 왜 그래? 무슨 고민 있어?”
준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손에 든 맥주잔만 들여다보며 만지작거렸다.
“어디 아파?”
“…… 아니.”
“그럼 뭔데?”
준호는 반쯤 남은 맥주잔을 비우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혼해야겠다.”
내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뭐라고 했어?”
“이혼.”
나는 너무 놀라서 말을 하지 못하고 멍한 상태로 준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야?”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로망이었던 사람과 결혼했는데 왜?”
“너무 완벽해서.”
“그게 무슨 소 하품하는 소리야?”
“니 말이 맞아. 죽자 하고 쫓아다녀서 결혼했지.”
“탤런트 뺨치는 미모에, 능력 있지, 돈 잘 벌지, 확실하고 똑똑하지, 뭐가 문제냐?”
“바로 그게 문제야.”
“너 지금 나하고 선문답 하는 거냐? 그럼 효린이 못 생기고 못 난 여자라도 되어야 한다는 거냐?”
“숨이 막혀서 못 살겠다.”
“숨이 막혀. 아니 효린이 목을 조르기라고 한다는 거야.”
“맞아.”
“야, 너 점점 나를 미궁으로 빠트리는 소리만 할래?”
“집 아니 가정이라는 게 사회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나 피로 등을 풀 수 있는 그러니까 정신적, 신체적 고민이나 갈등을 푸는 따뜻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뭐가 어려워서 그래?”
준호는 말하기가 힘이 드는지 망설이고 있었다.
“군대 처음 입대해서 훈련받을 때 내무반 사열하잖아. 모든 것 각지게 정리 정돈하고 부동자세로 서 있잖아. 그것보다 심리적으로 더 힘이 든다.”
“효린이 외모부터 깔끔하고 성격도 딱 부러지기는 하지.”
“정도가 너무 심하다. 머리카락 한 올 떨어져서도 안 되고, 이불, 소파 사용하고 나서 조금이라도 흩어지거나 틀어져도 안 되고, 화장실 사용하고 오줌 한 방울, 샤워하고 물 한 방울 벽이나 바닥에 남아 있어도 안 되고, 밥 먹을 때 조금도 흘려도 안 된다. 모든 게 그런 수준인데 어떻게 긴장이 안 되겠어?”
“너 지금 그걸 힘들다고 생각해? 그런 것은 효린을 사랑할 때 다 감당하려고 했을 것 아니야?”
“어느 날 자고 있는데 잠결에 뭔가 서늘한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떴더니 효린이 나를 한심한 듯 내려보고 있었어. 코 골고 잔다고. 그래서 코골이 수술까지 했다.”
“잘했네. 너 잠잘 때 좀 심하기는 하지. 그러니 효린이 잠을 잘 수 없었겠지.”
“그래서 나도 나름 노력했지. 그런데 그게 아니야.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지 마라. 행동은 약속할 수 있지만, 감정은 약속할 수 없다고 니체가 했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나 어쩌면 좋냐?”
“그래? 효린이 원하는 것을 알았으니까 니가 능동적으로 변하고 알아서 실천하면 효린도 만족하고 좋아할 것 같은데. 그만한 노력은 해야 로망이었던 사람과 사랑할 수 있을 것 아니야?”
“자신이 없다. 내가 너무 사랑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이혼하겠다는 거야? 이혼하면 너 금방 후회한다. 니체가 행동은 약속할 수 있다며. 효린이 원하는 걸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렇게 잘 아는 녀석이 왜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데?”
“나는 사랑을 위해 행동도, 감정도, 파 뿌리 되도록 변하지 않는다고 약속할 자신이 없어서 그런다. 됐냐?”
“그럼 나보고는 왜 그렇게 효린이 잡으라고 부추겼는데?”
“너 효린하고 결혼 못하면 폐인 될까 봐서 그랬고, 이혼하면 정말 폐인 될까 겁난다.”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택 (1) 2024.05.29 방언 (1) 2024.04.07 오 부장의 풍금 소리 (1) 2024.03.22 어린 악마 (1) 2024.03.09 행간(行間)의 오류 (0) 2024.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