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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로 들어가 차를 세우고 오른쪽 끝으로 가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그곳을 지나 벤치가 몇 개 있는 곳으로 갔다. 뻐근한 몸을 가볍게 풀고 벤치에 앉자 바로 옆에 개망초가 무더기로 하얗게 피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개망초 꽃을 볼 때면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생각난다. 비쩍 마른 몸에 퀭한 눈을 반짝이며 슬픈 표정으로 체념한 듯 앉아있는 모습. 누구도 관심 가져주지 앉지만, 이 땅 어디를 가도 슬픈 눈빛으로 피어 있는 꽃.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석진이 입원한 병실에 도착했을 때 점심 식사를 끝낸 듯 흰 모자를 쓴 여인이 지저분한 식판을 층층이 쌓은 캐리어를 밀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좀 어때?”
휴게소에서 꺾어온 개망초 꽃과 꽃집에서 산 안개초 꽃을 탁자 위 빈 꽃병에 꽂아놓고 침대 곁으로 가 앉으며 물었다.
“그렇지 뭐,”
진석은 물기 없는 목소리로 쓸쓸하게 말했다.
진석이 초등학교 친구인 문희와 결혼했고, 결혼 후 5년이 되어서야 아이가 생겼다. 두 사람의 기쁨은 얼마 가지 못했고 몇 달 후 의사는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며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나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뭐라고 쉽게 말할 수 없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태아도 사람으로 생각해서 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한 살로 여긴다. 조상의 그런 사고방식이 아니더라도 태아도 분명 소중한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서구와 달라 생활하는 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고, 장애인이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시설도 열악하고, 정부의 보살핌도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어쩌면 형극과도 같은 길을 걸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장애인 자식을 둔 사람이 장애인 자식을 먼저 보내고 따라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딱히 뭐라고 결론지을 수 없어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 두 사람 의지의 문제 아닐까? 성급하거나 너무 감성적이거나 충동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여러 가지로 생각한 후 결정하라고 밖에 말할 수 없구나.”
“니가 지금 내 처지라면 어떡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한참 동안 생각한 후 말했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고 내일 말해줄게.”
아무리 깊이 곰곰이 생각해봐도 장애인 아들이 겪어야 할 일도 가슴 아프고, 부모가 평생 짊어져야 할 희생의 무게나 강도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석진 부부는 아들이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문희가 앞에서, 석진이 뒤에서 끌고 당기며 모든 정성을 쏟았다. 옆에서 보기에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그렇지만 문희가 오십이 되던 해 폐암을 진단받은 일 년 후 죽고 말았다. 문희의 죽음은 석진에게 더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왔고, 아들이 열일곱 살이 되던 해 그러니까 문희가 죽은 후 이 년이 지나고 석진도 혈액암에 걸리고 말았다.
“장애인 아들을 키우는 일이 이렇게…힘든 일인 줄 모르고 그때 너무 감성적으로 생각하고 현실을 무시했던 것 같다.… 나 죽은 후…아들 장애인 시설에 가끔 들려서 살펴줘. 이런 부탁 해서 미안하지만.”
석진은 말하기도 힘이 드는지 말을 한 번에 이어가지 못하고 어렵게 말을 했다. ‘부탁해서 미안하지만’이라는 말을 하며 내 손을 힘없이 잡았다. 친구의 두 눈에서 흐른 눈물이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석진이 간 후 두 달이 지나서야 나는 그의 아들이 있는 시설을 찾아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부부의 암이 아들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희와 친구가 가고 난 후 이성도 감성도 뒤범벅이 된 듯했다. 뒤엉킨 실타래처럼 뭔가 정리할 수가 없었다. 장애인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 장애인 아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과 능력의 한계,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아무리 노력해도 홀로서기가 힘든 장애인 아들. 부모가 죽은 것에 제대로 인지조차 어려운 아들. 과연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지. 이런 생각들이 나를 혼돈 속에 빠트렸다.
머릿속에만 맴도는 혼란에 꼼짝 못 하기보다는 시설에 있는 석진의 아들을 찾아가서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있는 것이 머릿속을 단순화할 것 같았다. 치킨과 아들이 좋아하는 크림빵을 사 들고 자동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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