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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 부장의 풍금 소리
    단편 2024. 3. 22. 17:47

     

     

     

    현관 비밀번호가 뭐냐고? 잊어먹었다고?”

    갑자기 물으니까 나도 생각이 안 나는 데 전화 끊고 조금만 기다려 핸드폰에 저장해 놓았으니까.”

    전화를 끊고 오른손으로 턱을 고이고 잠깐 뭔가를 생각하더니 전화를 걸었다.

    “81750이야. 알았어.”

    누구야?”

    아내.”

    현관 비밀번호가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고 해서……

    오 부장도 생각이 안  난 거야? 바로 안 알려주고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다고 하더니 생각이 난 거야?”

    아니. 나도 잊어먹은 것처럼 하느라고.”

    아니 뭔 소리야? 바로 알려주지 않고 왜 잊어먹은 척하는데?”

    그게 그러니까. ……, 내가 바로 알려주면 혹시라도 아내가 자기만 그런가 하고 실망할 것 같아서.”

    아내를 배려해서 일부러 오 부장도 잊은 척하고 찾아서 알려준다고 했다고?”

    맞아.”

     

    오 부장의 말을 듣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시쳇말로 현타가 왔다.

     

    오 부장 퇴근하고 나랑 소주 한잔할까?”

    갑자기 웬 소주?”

     

    퇴근 후 회사 뒤 골목길에 있는 단골집으로 갔다.

     

    이 부장, 오랜만에 함께 소주 하는 것 같은데.”

    두어 달 된 것 같아.”

     

    철판에 삼겹살이 놓이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름 익는 냄새가 바로 후각을 자극했다.

     

    왜 갑자기 소주 마시자고 한 거야?”

    우리 둘이 소주 마신 지도 좀 됐고, 아까 오 부장 말 듣고 충격을 좀 받았거든.”

    내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뭔 일로 충격을 받아?”

     

    오 부장이 두 개의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며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까 오 부장이 한 말 있잖아. 제수씨를 실망하게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현관 비밀번호를 자신도 잊어먹은 척했다는 그 말 때문에.”

    그 말이 어때서?”

    바로 말하면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자신만 건망증이 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까 봐서 그랬다는 거잖아.”

    뭐 대충 그런 거지.”

    오 부장이 제수씨를 생각하는 그 마음을 알고 내가 현타가 올 정도로 충격을 받았지. 어제 아내가 저녁을 먹은 후 핸드폰이 없다고 여기저기 찾고 다니는 거야. 한참을 찾더니 백만 원짜리가 든 지갑을 잃은 듯 풀 죽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지.”

    뭐라고 했는데?”

    칠칠치 못하게 핸드폰을 어디에다 두고 그러는 거야? 맨날 그놈의 핸드폰을 제자리에 두지 않고 아무 데나 두니까 그러잖아.”

    핸드폰은 찾았어?”

    차에 떨어져 있더라고.”

    찾았으면 됐네.”

    그런데 아내가 내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오늘 아침에 밥도 안 차려주고 침대에 누워만 있더라고.”

    아침 안 먹었어?”

    편의점에서 해결했어. 오 부장은 언제부터 그렇게 아내 마음을 헤아리고 행동한 거야?”

    3년 됐을 거야. 그전에는 나도 이 부장처럼 그렇게 했는데 어느 날 생각해보니 부부 사이에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바꿨어.”

    오 부장은 절에 앉아 참선도 안 했는데 깨달음을 얻었나 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 부장이 사레들었는지 갑자기 캑캑대며 웃었다. 마시던  소주가 기관지로 들어간 듯했다. 

     

    웃지 마. 나 지금 심각하니까.”

     

    오 부장이 캑캑거리는 사이에 나는 소주만 마시고 있었다.

     

    요즘 이런 이야기가 유행하더라고. 사랑하는 것은 마주 앉는 것이 아니라 같은 쪽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라는 의미겠지.”

     

    오 부장의 말이 아스라이 먼 곳에서 들리는 것 같은데 내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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