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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웹스터의 소설 〈키다리 아저씨(Daddy-Long-Legs)〉독서 2026. 3. 9. 17:08
누군가를 조건 없이 도와주는 후원자가 나타날 때, 우리는 보통 “너 키다리 아저씨 만났니?”라고 묻곤 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 또한 그런 말을 쓰면서 정작 소설 〈키다리 아저씨〉를 읽어본 적은 없었다. 이제야 소설을 완독하고 나서 왜 그런 관용구가 생겼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으니, 그간의 무지가 조금 민망해지기도 한다.
〈키다리 아저씨〉를 읽다 보면 동화 〈신데렐라〉와 비슷한 서사 구조가 보인다. 두 주인공 모두 부모가 없는 고아라는 점, 신데렐라에게는 ‘요정 대모’가 있고 주디에게는 대학 교육을 후원하는 ‘키다리 아저씨’라는 후원자가 있다는 점이 그렇다.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하듯, 주디 역시 후원자인 키다리 아저씨와 사랑에 빠지는 결말은 로맨틱 판타지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신데렐라가 수동적이고 수혜적인 선택을 기다리는 인물이라면, 주디는 일방적인 도움을 넘어선 일종의 상호 교환과 성장을 보여준다.
열일곱 살이 되어 고아원을 떠나야 했던 주디(저루샤 애벗)는, 가장 부유한 평의원 한 명이 자신의 작문 실력을 높이 평가해 대학 후원을 결정했다는 말을 리펫 원장에게 듣는다. 후원의 조건은 단 하나, 한 달에 한 번 후원자에게 학교생활에 대한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주디는 ‘존 스미스’라는 가명을 써달라는 후원자의 큰 키와 뒷모습만 보고 그를 ‘키다리 아저씨’라 부르며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가족도 지인도 없던 주디에게 아저씨는 유일한 소통 창구였다. 한 달에 한 번이면 족하다는 편지를 주디는 일상과 고민, 친구 관계까지 담아 자주 보낸다. 때로는 아저씨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때로는 고집불통이라며 원망을 쏟아내기도 하며 주디는 편지를 통해 자아를 형성해 나간다.
사실 후원자의 정체는 대학 친구인 줄리아의 젊은 삼촌, ‘저비스 펜들턴’이었다. 그는 정체를 숨긴 채 학교로 주디를 찾아오고 방학 때는 자신의 농장에서 지내게 하며 곁에서 그녀를 지켜본다. 주디는 저비스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가 키다리 아저씨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후원자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 그의 청혼을 거절하기까지 한다.
주디는 고아원 시절부터 마냥 순종적인 아이가 아니었다. 대학에서도 후원자의 간섭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과도한 선물을 되돌려 보내며 후원금만 받겠다고 고집을 부릴 만큼 자존감이 높았다. 심지어 자신이 쓴 소설의 대가로 받은 1,000달러를 아저씨에게 송금하며 도움을 갚으려 노력한다.
소설의 마지막, 정체를 드러낸 키다리 아저씨는 묻는다.
“주디, 내가 키다리 아저씨라는 걸 정말 눈치채지 못했니?”
소설은 로맨틱하고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만, 이 작품을 단순한 ‘신데렐라 스토리’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디는 주어진 행운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하며, 받은 도움을 스스로의 힘으로 되갚으려 하는 독립심 강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자립하려는 주디의 노력은 이 소설을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남게 한다.
이 소설에서 멋진 문장.
‘나는 행복해지기로 결심했어요. 그게 건강에도 좋으니까요.’
‘걱정은 아무 쓸모가 없어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슬퍼할 필요는 없잖아요.’
두 번째 문장이 우리에게 많은 걸 말해주고 있다.
※ 영화, 만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만들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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