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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 두 정상의 감격적인 만난 이후 남한과 북한은 평화를 위한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뗄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루진 못한 한반도에서 평화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신 제네바 선언을 할 때 많은 언론과 사람들은 한국 패싱 등을 언급하며 그 선언을 조롱했다. 하지만 채 일 년이 안 되어 문재인 대통령은 ‘운전자’론을 실행하며 북한, 미국, 중국, 일본 사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남북의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퇴임 후 손녀를 자전거에 뒤에 싣고 밀짚모자를 쓴 채 미소를 지으며 고향 길을 달리던 사심 없고 위대한 평민으로 살고자 했던 사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 되던 날의 감격을 다시 되살려본다.
바보 대통령
16대 대선 투표 하루 전날, 그러니까 12월 18일 저녁 10시 30분쯤 텔레비전에서 정몽준 씨가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한다는 자막의 속보가 반복해서 나오고 있었다. 이어서 특집 뉴스가 나오며 국민통합 21의 대변인이 정몽준이 노무현의 지지를 철회한다는 짤막한 소식을 전하고, 이에 대한 기자들의 해석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나라당사는 이제는 승리했다는 분위기가 역력했고, 민주당사는 날벼락을 맞은 듯했다. 두 당사의 표정에서 이미 대선의 결과는 판가름이 난 것처럼 보였다.
1987년 대선이 떠올랐다. 전두환의 뒤를 이은 군사 정권을 청산할 전환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끝까지 욕심을 버리지 못해 단일화는 수포로 돌아갔다. 예상대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고, 사람들은 심한 정신적 공황 상태를 경험하며 양 김 씨를 저주했었다.
어렵게 이룬 두 사람의 단일화가 결국은 이렇게 무산되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사람에게 대통령이 굴러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생각으로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역사란 늘 몇 사람의 역량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모든 국민과 그 나라를 구성하는 총체적 힘의 벡터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할 때 우리의 수준은 결국 이것밖에 되지 않는가 하는 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후 노무현) 단일 후보가 되기까지 걸어온 과정은 우리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소신과 정의감을 가진 사람이라고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권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된 후 그는 한 번도 소신을 굽히거나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겪은 어려움과 좌절은 보통 사람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노무현은 묵묵히 그걸 받아들이며 기적처럼 회생하였고, 결국 정몽준 씨와 단일화를 이루어 명실상부한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1990년 국민이 만들어준 여소야대의 구도를 깨뜨리기 위해 1991년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씨를 끌어들여 밀실 야합으로 3당 합당을 했다. 이때 노무현은 김정길 씨와 함께 3당 합당에 동참하지 않았다. 결국 김정길은 지역감정의 거센 회오리에 정치판을 떠났고, 노무현은 홀로 남아 부산을 짝사랑하며 지역감정의 틀을 깨드리기 위해 전사처럼 나섰지만 3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1992년 총선에서 부산에서 국회의원으로, 1995년에는 부산 시장에, 2000년에는 자신의 지역구인 종로를 버리고 다시 부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서울에서 출마했으면 쉽게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스스로 기름통을 짊어지고 불로 뛰어들었다가 심한 화상을 입고 물러나야 했다. 2000년 총선에서 서울 자신의 지역구를 버리고 부산에서 출마했다가 낙선한 후 ‘정치는 인간을 피폐하게 만든다. 당분간 쉬고 싶다’고 했다.
부산 사람들이 노무현을 버렸지만 노무현은 부산 사람들에 대한 감정을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농부는 밭을 탓할 수는 없겠지요.…… 저는 이 나라와 부산을 사랑합니다. 우리 또 함께 힘을 모아 나갑시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한겨레 21 2000년 4월 27일)
노무현의 낙선을 보고 사람들은 망국적 지역주의를 개탄하며 그의 낙선을 아쉬워했다.
희망이든 절망이든 전염성을 갖게 마련입니다. 희망이 아닌 비관의 전염은 치명적입니다. 노 의원의 패배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의 좌절이 한 개인의 좌절로 끝나지 않고 지역주의와의 싸움에서 좌절감의 확대재생산으로 이어지리라는 우울한 전망 때문입니다. 총선 결과에서 한국 정치의 절망적 미래를 읽는 한 근거도 바로 그것입니다. (만리재에서 한겨레 21. 2000년 4월 27일)
노무현의 바보스럽지만 용기 있고 소신 있는 행동을 사람들은 우리 정치에서 신선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노무현을 사람들은 바보라고 불렀다. 그리고 바보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노사모’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사이버 공간을 통하여 노무현을 지지하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노사모’는 오만 명이라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그간 민주당의 국민경선과 이번 대선에서 노무현이 가는 곳이든 아니든 그를 지지하고 지키는 등대지기가 되었다. 노무현의 우직한 행동은 사람들에 의해서 인정을 받고 우리 정치에서 신기원을 만들어 가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돈에 의해서 겨우 움직이는 동원부대가 아니라 자기의 돈을 들여가며 노무현을 지지하는 ‘노사모’는 소신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에게 받치는 선물이었다. 그만큼 그의 행동은 다른 정치인에게서 볼 수 없었던 참신하고 우직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의 돈을 내고 지원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우리 정치에서 희망을 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노사모 회원은 아니지만 노무현의 열렬한 지지자이다. 그는 우리 정치에서 우직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어 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올해의 선거를 미디어 정치, 인터넷 정치라고 말들 하지만 내게는 텔레비전 토론이나 인터넷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의 이미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가 대통령을 뽑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나의 판단 때문이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기 때문에 지금 하는 말에 의해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소신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어떤 말이라도 서슴지 않은 사람은 거짓말쟁이 뿐이다.
2002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일, 전날 밤 정몽준의 노무현 지지 철회가 가져올 결과가 불안해서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진 선생과 함께 벌교를 갔다. 요즘 모치라는 생선이 제철이라고 해서 음식점에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와서 텔레비전의 오후 6시 출구 조사 발표를 보면 될 것 같았다. 벌교에 가서 모치를 물으니 오늘은 고기 잡는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생선을 먹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니었으니 별반 서운할 것도 없었다.
횟집 앞에서 아줌마들이 펄이 묻은 고막을 팔고 있었다. 막 잡아왔는지 펄이 마르지 않은 채 싱싱한 게 생명력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 고막을 보면서 다시 노무현이 생각났다. 썩고 부패한 채 진드기처럼 단물을 찾아다니고, 조폭처럼 한 사람의 우두머리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고막을 키우는 살아 숨 쉬는 펄처럼 우리 정치에서 신선한 산소 같은 노무현! 그가 이번 대선에서 마저 패배한다면 오염된 펄은 더는 고막을 키워낼 수 없을 것이다.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피를 말리는 개표와 결과. 대통령 노무현 탄생!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염려를 말끔히 씻어내며 그는 16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기쁨이 전국방방곡곡에서 축제의 기쁨으로 함성이 이어졌다. 바보 같은 행동으로 일관한 사람이 드디어 대통령이 되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가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어두운 정치사에서 윤리의 승리이며, 정의가 승리하는 희망의 횃불을 지핀 쾌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보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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