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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비탄 노회찬 국회의원산문 2018. 7. 25. 14:57
애도, 비탄 노회찬 국회의원
(JTBC에서)
무슨 말을 해도 그의 죽음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진보정치의 시작이자 보루였던 정치인이었다. 노동자이었고 노동운동의 선봉에서 노동자로 그리고 노동자를 위한 삶을 살았다. 한때 민중당에서 같이 활동하던 김문수, 이재오 의원 등은 진보정당운동을 포기하고 김영삼의 영입을 받아들여 민주자유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그는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고 고난의 길인 진보정당의 꿈을 접지 않았다. 국회의원이 된 그의 의정활동은 남다른 데가 있다.
2004년 국정감사에서 피감기관이 뽑은 베스트 의원에 선정되었다.[20] 2007년 12월 9일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이 선정하는 백봉신사상에서 신사적인 의원 베스트 10에 뽑혔다.[21] 이외에도 2005년 여성이 뽑은 여성친화적인 남성의원 1위[22], 2006년 카드 포인트 정치후원금 1위, 2006년 진보지식인 대상 설문조사 대권후보 2위[23], 2005년 시민운동가가 뽑은 최우수 의정활동 1위, 2005년 PD들이 뽑은 베스트 의원 1위에 뽑혔다. 여성단체 호주제폐지 감사패, 한글을 빛낸 큰 별, 무지개 인권상, 장애인 차별금지법 감사패, 동남아 쓰나미 국회의원 우수외교상, 조선왕조실록 환수추진으로 불교계 감사패 등을 수상했다.
(백과사전)
국회의원으로서 이런 값진 활동을 더 빛나게 한 건 그의 언어에 있다. 해학적이고, 풍자적이며, 위트로 시민들을 즐겁게 해 주었고, 시민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변해 주었다. 보통 국회의원들의 터무니없이 위압적이고 고압적인 언어와 다르게 그의 언어는 재치와 순발력이 뛰어났다. 그렇지만 단순히 우스개가 아닌 부드러운 비수가 들어있어 늘 통쾌 상쾌한 사이다 같았다. 나는 그를 부드러운 협객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전설적인 무사 미야모토 무사시가 한 손에는 무지개가 서린 칼을, 한 손에는 붓을 들었던 예술가였던 것처럼, 그는 한 손에는 촌철살인의 날카로움을 다른 손에는 부드러운 풍자로 상대를 제압했던 진정한 언어의 달인이었다.
돈 4천만 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가장 큰 형벌을 내린 그는 우리 정치사에서 400억을 주어도 다시는 보기 힘든 정치인(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시는 그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위트와 풍자로 상대를 제압하는 진검 승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슬프다. 부디 저승에서라도 돈 때문에 제약받지 않는 제대로 된 정치판에서 찬란하게 명성을 날리며 활동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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