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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의 대물림
축구경기장에서 붉은 악마들이 꽹과리를 치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TV를 보는 내 마음까지 후끈 달아오름을 경험하게 된다. 어디에서 그런 폭발적인 힘이 나오는지 궁금하다. 외국에서 수적으로 열세인 우리의 응원단이 꽹과리를 치며 응원을 하기 시작하면 다수의 외국인들이 그 힘의 분출을 불가사의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응원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물놀이에서 신들린 사람처럼 무아경에 빠진 연주자들, 서너 시간을 쉬지 않고 목이 터져라 뽑아내는 판소리의 가락도 그렇다. 그런 망아의 경지가 어디 예술뿐인가. 일상에서도 그런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노래방에서 한 번 마이크를 잡으면 노래가 바닥날 때가지 부르는 신명,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게임을 해야 직성이 풀리고, 술을 먹어도 꼭지까지 돌아서 취생몽사 속에서 너와 내가 구분이 안 되어야 하고, 부처님을 믿던 예수님을 믿던 미지근하게 믿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IMF 위기가 닥치자 은행 출입구까지 줄을 서서 금을 내놓던 사람들을 외국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국민적 성향의 근원은 어디이고, 이런 가공할 위력을 가진 장점을 어떻게 살려나가야 하는 것일까. 신명은 우주생명력과 교합된 상태로 확대된 자아입니다. 말하자면 우주생명이 인간내부에 지펴 들어가 자기 안에 우주가 확대되어 나오는 영성적인 것이지요.(「한국전통춤의 생명사상 」채희환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에서 재인용 216쪽 천규석)
신명을 영성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예술가는 이 신명을 불러 일으키는 신명의 대행자라고 말한다. 예술가는 종교에서 신을 부르는 사제이고 삶에서 액을 제거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한다. 이런 시각은 천규석의 신명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굿판은 신명판이다. 그러므로 신명은 신에 의한 신지핌이나 내림굿이라거나 틈을 아우르는 힘이라거나 선험적으로 인간에 내재하는 정신력이라거나 일과 놀이 또는 모든 사물에 편재하기보다, 한데 어우러지면 그때 솟아나는 생기(生氣)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 233쪽 천규석 )
우리 민족이 가진 불가사의한 힘의 근원이 영성적 또는 굿판이라면 결국 우리는 샤머니즘의 정신적 대물림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싫든 좋든 현재 우리 일상이나 문화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련의 현상들이 무속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최준식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의 신명을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기복(祈福)을 비는 종교(불교나 기독교 모두)의 행사에서 사람들이 무아의 경지가 되어서 쓰러지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접신하는 행동은 흑인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종교를 믿어도 미지근하게 믿지 않고 신명나게 믿어야 진실한 믿음으로 인식되는 우리의 종교관도 결국은 무속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최준식의 분석을 읽고 공감하는 바가 컸다.
위기가 닥치거나 큰 행사에서 보여주는 놀랄만한 저력들이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일회성이거나 단명으로 끝나는 것도 결국은 논리적이거나 이성적 바탕 위에서 형성되어지지 못하고 신명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원래 신명이란 신이 내리는 순간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당이 신을 부르고 신이 내리면 맨발로 시퍼런 작두날을 타는 행동은 일상에서는 불가능하듯이.
그러면 과연 우리의 신바람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이것 역시 우리 민족의 종교적 심성 가장 깊은 곳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는 무교를 떠나서는 설명이 잘 안 될 성싶다. 신바람, 신명은 바로 신이 내렸을 때, 신이 들렸을 때 생기는 망아경적인 현상이다. 신이 나기 위해서는 신이 내려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굿을 하는 무당에게 신이 지피면 무당이 망아경 속에서 신명나게 한판 놀 듯이 우리는 놀 때나 일할 때 바로 이 모습을 반복하는 것이다.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51쪽 최준식)
우리 민족의 핏줄 속을 흐르는 신명을 지속적으로 분출시킬 수 있는 공통분모는 없는 것일까. 누구의 구속을 유달리 싫어하고 동쪽으로 가라면 서쪽으로 가는 자유분방한 힘이 하나로 모아질 수만 있다면 야박한 규칙이나 법칙을 만들지 않아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분출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신명은 혼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모아지고 일에 대한 방향이 올바르고, 공감이 일어나면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자율적인 기운이다. 우리의 혈관에 섞여 흐르는 신명을 살려 종교, 지역, 사상의 벽을 허물어 민족이 하나 되어 무당이 작두날을 타듯 신명나게 살아갈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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