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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독서 2018. 8. 23. 12:38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사람들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 때면 일상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소설이라도 한 권 만나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마음 놓고 악당이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며, 일상에서 쌓인 불만을 해소하는 대리 만족이나 통쾌함에 잠시나마 빠져들게 된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바로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소설이 아닌가 한다. 책을 펼쳐서 몇 페이지 읽지 않아도 엄청난 회오리바람 같은 흡인력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마디로 놀라움 그 자체다. 결과가 빤히 드러나 보이는 소설, 상상력의 깊이와 폭의 함량 미달인 소설, 상투적인 줄거리를 끌어가는 그렇고 그런 소설에 실망한 사람들은 이 소설을 읽는 순간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독자의 예견과 상상력을 불허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스토리, 소외되거나 모순투성이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마티아스와 클라우스 두 어린 쌍둥이가 살아가는 방식은 흡사 작은 악귀들 같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도 하나같이 소외되거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다.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할머니에게 의탁되어진 쌍둥이, 사람들에게 소외 받고 무시당하는 언청이이며 사팔뜨기인 토끼주둥이, 토끼주둥이의 밑을 만진 약점으로 쌍둥이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주어야 하는 신부, 아버지의 자식을 낳은 야스민, 불구인 그 아들 마티아스, 한 권의 책을 쓰기를 원하지만 끝내 쓰지 못하고 누나를 살해하는 서점 주인 빅토르, 전쟁과 사회의 피해자인 불면증 환자, 남편의 억울한 죽음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정신과 의사의 원치 않은 정부가 된 도서관 여자 등.

     

       쌍둥이는 할머니에게 의탁되어진 후 그들만의 생존 방식을 습득해 간다. 번갈아 가면서 서로의 몸을 때리는 신체 단련, 온갖 욕에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 정신 훈련, 힘써 얻어다 내버리는 구걸 훈련, 장님과 귀머거리 훈련, 할머니가 아무리 맛있는 것을 권해도 먹지 않는 단식 훈련, 동물을 잡아 죽이는 잔혹 훈련 등으로 쌍둥이는 강해지고, 학교에 가지 않고 스스로 공부를 한다. 닥치는 대로 읽고 쓰는 훈련을 계속한다. 이들은 스스로 터득한 존재의 방식으로 전쟁 중에도 남들처럼 배가 고파서 어려움을 겪지 않으며 학교에 가지 않고도 지식을 쌓는다. 사람들이 돌아버린 바보들로 취급하지만 이들은 영악하고 강인한 아이들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상식이나 윤리를 초월한다.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과 법칙을 만들어서 그 법칙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이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무표정하고, 감정의 과잉 분출이나 연민을 배제한 채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들에게는 선과 악의 두 이율배반적인 양극이 존재한다. 필요에 따라서 선과 악을 차례로 선택하면 된다. 이들의 존재 방식에는 뉘우침이나 양심의 가책은 오히려 사치일 뿐이다. 그저 살아남기 위한 악마적 행위가 있을 뿐이다. 인간들이 만든 윤리, 도덕, 종교적 터부를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아버린다. 어른들의 약점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이를 이용하여 살아남는 방법을 익혀갈 뿐이다. 작은 악마들 속에 거리낌 없는 악이 존재하듯 선 또한 감동 없이 존재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철저히 무시당하는 토끼주둥이 소녀와 그 어머니를 먹여 살린다. 병든 신부를 끝까지 돌봐주고, 아버지의 아기를 낳은 야스민도 보살펴 준다. 선과 악이 대립하며 공존하는 이들의 삶의 방식에서 선은 그래도 인간에게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또 이 소설은 인간 소외의 처절함을 보여준다. 토끼주둥이라고 불리는 소녀는 사람들에게 사람이 아닌 짐승 취급을 당한다. 개와 관계하는 장면을 들킨 토끼주둥이는 쌍둥이에게 날 사랑하는 건 동물들뿐이다.”라고 말한다. 소녀는 결국 스스로 군인들을 불러들여 쾌락과 죽음을 맞바꾼다. 어떤 소설도 이보다 사실적으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이런 장면을 아무런 연민도 없이 삭막하게 보여준다. 변방에 서 있는 인간을 인간이 아닌 더러운 오물로 취급받게 하고, 그런 삶을 마감하는 방법에서 인간 삶에 대한 허무의 극한을 느끼며 진저리를 치게 된다.

     

       마지막 하권에서는 선과 악이 아닌 스토리의 혼동 속에 빠지게 된다. 50년 만에 나타난 클라우스는 마티아스와 어린 시절, 혼자 남은 클라우스의 생활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 다른 클라우스와 어머니가 생존하고 있다. 동생과 이별했던 클라우스, 그리고 중권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린 마티아스를 찾아 고향으로 온 사람이 클라우스인지 마티아스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리고 어머니와 살고 있는 또 다른 클라우스가 등장하여 사건과 인물이 얽히고설킨다.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혼돈과 혼란만이 있을 뿐이다. 존재와 부재의 혼돈 속에 거짓말 같은 참말, 참말 같은 거짓말만이 존재할 뿐이다아무튼 이 소설은 인간 삶에 대한 강렬한 의문과 회의를 던져준다. 온갖 악과 선의 공약수를 가진 쌍둥이라는 동질성이 이별을 통해서 개별성을 추구하는 듯하다가 결국은 혼돈으로 결말에 이르게 된다. 결론은 뛰어난 구성력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독자를 경악하게 만드는 수준 높은 지독한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뛰어난 거짓말에 흠뻑 취해서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심한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어느 것이 진짜 이야기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거짓과 진실에 대한 의혹을 그대로 보류한 채 이 책이 주는 흡인력(재미나 의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건 전쟁에 대한 지독한 경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악과 선의 판단 기준이 모호한 채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어린아이들의 생존 방식이 어떠하든 그 생존 방식을 긍정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인간의 삶에 대해서 연민과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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