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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가자 말고 나랑 놀자”...또 다른 추석 꿈꾸는 여성들산문 2018. 9. 24. 14:23
“제사 가자 말고 나랑 놀자”...또 다른 추석 꿈꾸는 여성들
이 제목은 경향신문 2018년 9월 21일에 이 아무개 기자가 쓴 글이다. 이 기사를 읽으며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된다.
“가부장제의 집약판이 명절”
“예전에 어떤 행사에서 자신도 시댁 제사를 안 간다고 말한 기혼 여성을 봤는데 굉장히 반가웠어요.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기만 해도 반가운데 당일에 모여서 얘기하고 밥을 먹으면 너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남자상은 안방에 차려지고 음식도 더 많아요. 엄마와 숙모들은 주방 앞에 마련된 작은 상에서 식사를 했어요. 남자들의 상에서 물이나 밥이나 기타 다른 것들을 주문하면 수시로 주방을 왔다 갔다 하며 날라줬죠. 제가 어른이 되자 큰 상에서 작은 상에 앉으라고 했어요. 저는 작은 상에 앉기 싫었어요.”
추석 전에 방앗간에 갔다. 가면서 일요일이라서 문을 안 열었으면 어쩌지 하고 조금 걱정을 했는데 방앗간을 문을 열었고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자기 키 만큼이나 되는 고추 자루를 가지고 오기도 하고, 참깨와 들깨를 가지고 오기도 했다. 추석이 곧 돌아오니까 자식들이 오면 주려고 농사 지은 걸 가지고 와서 고추를 빻아 고춧가루로 만들고, 들기름과 참기름을 짜고 있었다.
추석의 의미는 무엇일까? 신문기사에 난 것처럼 추석이 오로지 여자들에 대한 학대와 차별이고, 가부장제 문화의 집약으로만 판단할 수 있는 걸까? “제사 가자 말고 나랑 놀자”라고 할 만큼 추석은 여자들에게 타도의 대상일까?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한다. 일단 결혼을 하면 남편의 가족 그리고 아내의 가족과 좋은 싫든 가족과 친척이라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생판 남이었던 남녀가 결혼을 하게 되면 부부라는 인연으로 인해서 단지 둘이 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끈끈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여성은 며칠간 자신의 조상도 아닌 부계 조상 차례를 지내기 위해 상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도맡고 남성은 여성을 배제한 채 차례 의식 주체가 된다.’
남편의 조상과 가족이 남이라고 생각한다면, 남자의 입장에서는 여자의 조상과 가족 역시 남일 뿐이다. 그런 사고방식이라면 구태여 결혼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그래야 남편 가족과 불화를 겪지 않을 것이며 남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 때 사람들은 아이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마찬가지로 내가 이 땅에 서서 땅을 딛고 살 수 있게 만든 조상들을 잊지 않게 위해서 추석에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것이 그처럼 부당하고 불합리하고 생각한다면 결혼해서는 안 된다.
나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오늘 아침 차례를 지냈다. 신문에서 말하는 내 조상이 아닌 아내의 부모님을 위해서 지냈다. 딸만 다섯인 아내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둘째 딸이고 사위인 우리가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하고, 차례를 지낸다. 우리 조상과 부모의 산소에는 미리 다녀왔다.
세상 살아가는 일에 마치 여자들만이 온갖 피해를 다 당하고 사는 것처럼 말하는 건 옳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편이 조금 더 노동과 노력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여자가 조금 더 불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올해 같이 지독히도 더웠던 여름과 싸우며 농사를 지어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준비해 놓고 자식들이 언제나 올까 기다리며 문밖을 내다보고 또 내다보는 늙은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제사 가자 말고 나랑 놀자”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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