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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중심에 우뚝 선 박항서산문 2018. 8. 28. 14:39
변방에서 중심에 우뚝 선 박항서
박항서!
그가 화려하게 돌아왔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 감독이었던 히딩크 감독 옆에 그림처럼 붙어있던 수석 코치 박항서. 한국이 꿈에서나 가능했을 월드컵 4강에 올랐을 때 히딩크와 우리 선수들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지만 찬사 속에 그는 한 번도 언급되는 걸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월드컵 이후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팀을 맡으며 생애 처음으로 감독직을 맡게 된다. 하지만 당시 하늘을 찌르던 대표팀의 사기를 등에 업고도 겨우 동메달밖에 따지 못했다는 이유로 74일에 만에 경질되었다. 그 후 경남FC, 전남드레곤즈, 상주 상무 등을 전전해야 했다. 감독한 팀들의 성적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3부 내셔널리그 창원 팀 감독으로 추락했다.
한국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박항서가 2017년 10월 우여곡절 끝에 베트남 축구 감독으로 부임한다. 당시 그의 화려하지 않은 전력으로 인해서 베트남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고 한다. 몇 달 지도하다가 교체되는 다른 감독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되었는지 모르겠다.
166 센티미터 박항서가 드디어 중원에 그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2018년 중국 광저우 올림픽 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아시아 축구연맹(AFC) 23살 이하 챔피언십 결승전에 베트남 축구팀을 올려놓았다. 그가 작은 거인으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운명의 날 1월 17일 축구장 장면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베트남 선수들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혹한이었지만 신나게 달리고 뛰었다. 우즈베키스탄에게 져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박항서는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고개 숙이지 마라. 너희들은 충분히 준우승을 누릴 자격이 있다.”
짐작컨대 베트남 축구선수들을 그 말에 위로와 용기를 받았을 것이다.
드디어 그들은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4강에 올랐다. 예선에서 무패로 16강에 올라 바레인을 꺾었고, 8강에서는 시리아마저 꺾고 4강에 진출했다. 베트남은 4강에서는 예선전에서 말레시아에 지는 등 졸전을 벌이고 2위로 힘겹게 8강에 올라, 우즈베키스탄과 혈전을 벌여 진땀 승을 거운 우리나라와 만난다.
박항서 그가 약체인 베트남을 짧은 시간 안에 강팀으로 만든 걸 사람들은 매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는 매직이 아닌 노력이라고 말한다. 그간 맡았던 팀들의 성적 부진으로 인해서 지도자로서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할 시기에 베트남 축구팀 감독이 되어 승승장구 하는 모습이 참 신선하다. 매직이든 노력이든 지금 그는 변방에서 일어나 중심부에서 활활 타오르는 활화산으로 부활해서 베트남을 들끓게 하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우리가 히딩크의 마력에 빠졌듯이 베트남 사람들은 지금 박항서의 마력 속에서 열광하고 행복해 하고 있다. 베트남에게도 박항서 감독에게도 참으로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박항서 그가 앞으로도 더 높을 곳을 향해서 달려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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