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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서 만난 사람들 (2002년 8월)평행선 눈 2018. 10. 8. 13:54
금강산에서 만난 사람들 (2002년 8월)
이번 금강산 여행에서 두 가지 기대가 있었다. 꿈속에 그리던 금강산을 오르는 것과 북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북한 땅을 처음 밟으며 만난 북한 사람은 설봉호에서 내려 장전항 부두로 들어가며 검색대에서 여행권을 검사하는 사람과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이었다. 다소 긴장한 채 가방과 짐을 검색대에 올려놓고 여행증을 보이면 안경 너머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이 도장을 찍어주었다. 서로가 주고받을 만한 말이 없다.
장전항에 있는 해금강 호텔(선박으로 만든 호텔)로 들어서면 동남아 사람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우리 가요를 노래하며 반겨준다. 배 안에서 안내를 해주거나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작달막한 키에 둥글둥글한 얼굴을 한 조선족(나는 조선족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재일 동포, 재미 교포처럼 재중 교포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아가씨들이다. 현대에서 운영하는 이 배는 임금을 줄이기 위해 재중 교포들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는 듯하다.
같은 민족이면서 조상이 일본의 압제를 견디지 못하고 중국으로 갔다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하여 한국에 태어났으면 자본주의의 부를 같이 누려야 할 사람들이 값싼 임금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해금강호에 짐을 두고 버스에 오르며 만나는 운전기사도 재중 동포이다. 중국에서 운전 실력이 좋은 사람만 선발하여 채용하였다고 한다.
온정각 휴게소를 오가며 만나는 사람은 길목마다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들이다. 하나같이 체구가 왜소하고 어려 보이는데 표정이 없다. 손을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버스를 타고 오가며 관광용으로 만든 길옆으로 북한 주민들이 다니는 길이 있다. 듬성듬성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별로 반응이 없다.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남한의 임수경이나 대학생들이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북한을 방문할 때나, 김대중 대통령이나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방문할 때 그처럼 열정적으로 환영을 하던 사람들은 관제 환영이 아니었나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장전항 주변은 남한의 휴전선 부근처럼 한적한 오지이다. 어릴 적 한적한 시골에서 자동차가 한 대라도 지나가면 벌떼처럼 쫓아가며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던 기억을 가진 나로서는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았다.
속초항에서 배를 타면서부터 듣는 소리가 북한에 가면 주민에게 말하지 않기, 침 뱉지 않기, 지정된 곳 이외에서 담배 피지 않기, 쓰레기 버리지 않기 등을 반복하여 듣게 된다. 이름하여 하지 마 관광이다. 우리가 속내를 터놓지 못하게 교육을 받듯이 북한에서도 보지 않기, 말 걸지 않기 등을 철저히 교육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호기심 많은 아이들까지 시선 한 번 주지 않는 것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행동이다.
입만 열면 통일과 화해를 말하는 사람들이 서로 스쳐 지날 때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면 서로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될 터인데 이해할 수가 없다. 길을 가다가, 일을 하다가 서로가 아는 체를 하고 웃어주면 친근감이 생길 터인데 보고도 못 본 체 하는 북한 주민을 보면서 북한이 단지 달러만 생각하고 진정으로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하다못해 자기 고향에 온 손님에게 의례적인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손을 흔들어 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거리를 지나며 무거운 마음을 떨쳐 버리기가 어려웠다.
온정리 주변에 있는 농가들은 하나같이 규격화된 집들이었다. 일자 형태로 지어진 건물에 현관이 하나 보이고 지붕은 슬레이트 기와로 덮었다. 벽과 지붕에 페인트를 칠하지 않아서 우중충한 무채색으로 사람이 살지 않은 듯 보이는데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고서 사람이 산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흑백 영화의 낡은 화면처럼 활기가 없어 보이는 마을의 모습이다.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페인트칠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이 아주 잘 보존되어 있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은 금강산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환경 감시원들의 행동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북한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어 잘 살게 되어도 집을 그렇게 짓고 살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금강산에 오르면 곳곳에 남녀가 한 조가 되어 환경을 감시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쓰레기를 버리거나, 무심코 침을 뱉어도 여지없이 벌금을 물어야 한다. 산을 오르는 도중에 화장실을 이용하여 소변을 보면 여자는 삼 달러, 남자는 일 달러를 내야 한다. 소변을 처리하는 봉투를 일본에서 수입해서 사용한다고 한다. 지나치리만큼 철저한 자연보호로 인하여 금강산은 태고의 맑음과 청결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바위 곳곳에 음각하여 붉은색 칠을 한 김일성 일가의 찬가를 바라보면서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 남과 북에 건널 수 없는 강이 가로놓여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한의 유원지에서 겪는 불쾌감을 금강산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습관화된 무질서로 인하여 무심코 버리는 쓰레기나, 침을 뱉어 벌금을 물지 않을까 각별히 조심하게 된다.
우리 조상들도 산을 오를 때는 하인에게 매화통(이동 화장실)을 짊어지고 가게 했다고 한다.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경외심을 가지고 경건한 마음으로 대하던 조상들의 정신을 북한에서는 잘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고, 남한의 무질서한 놀이 문화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금강산 망양대에서 북한 환경 감시원이 내게 먼저 말을 걸어 왔다. 이번에 온 사람들은 교사들이냐는 것과 나이가 얼마나 되었느냐는 일상적인 물음이었다. 같이 간 한 교사에게 한 환경 감시원은 솔직하게 말을 하자면서 여수반란사건에 대해서도 묻고, 쌀 지원을 해주고 어디에 쓰느냐고 간섭을 하는 것은 불쾌하다는 등의 대화를 길게 나누었다고 한다. 대화에서 서로의 벽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해금강이나 삼일포를 관광할 때도 어김없이 환경 감시원들이 서 있다. 하나같이 고무장화를 신고 있다. 비가 오니까 포장되지 않은 북한에서는 고무장화가 필수품일 것 같다. 내 어린 시절에도 그랬듯이……. 온정각 주변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옷차림이 비교적 깨끗했다. 그렇지만 해금강으로 가는 길에서 본 주민들의 옷차림은 검정색 계통이 주종을 이루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아니면 부족한 물자 때문에 그런지 판단하기는 어려웠지만 주민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관광하는 길 양옆으로 높다란 철조망을 쳐서 남과 북의 만남을 차단하려는 폐쇄된 모습을 보며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옥수수, 콩, 벼가 무성하게 자라지 못하고 있어 비료가 부족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가 있었다. 밭에서 유일하게 배 밭을 한군데 보았는데 남한의 길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과일나무와 비교가 되었다. 열린 배가 작아도 너무 작았다. 북한 주민들이 배를 곯지 않으려면 비료와 우수한 종자가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온정각에서 온갖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뷔페를 먹으며 바로 가까운 곳에서 같은 핏줄을 가진 사람들이 배를 곯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프다. 어떤 형태로든 북쪽에 더 많은 식량, 비료, 종자가 지원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농사에 관계된 기반 시설들도 지원되어야 할 것 같다. 또한 농사 기술이나 농기계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도록 꾸준한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
마지막 날 온정리를 떠날 때 북한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온정리 마을 어귀 철길 너머에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아이들이 있었다. 비록 야위고 가냘픈 모습이었지만 그 아이들에게서 비로소 사람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순수하고 맑은 미소로 손을 흔들어 주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2박 3일 동안 환경 감시원의 경계하는 눈빛, 주민들의 애써 외면하는 듯한 자연스럽지 못한 태도가 아이들의 모습에서 일순간 씻은 듯이 날아갔다. 같이 손을 흔들며 비로소 인간다운 모습을 서로가 확인할 수 있었다. 긴장되고 서먹했던 금강산 관광의 마지막 순간 온정리를 떠나며 아이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그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그 아이들과 함께 금강산을 오르며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가지고 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서로 간에 경계하는 대화가 아닌 금강산의 아름다움과 사람이 살아가는 그런 저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비록 통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북한 사람은 김정일이나 당에서 잘못하는 일을 비판하고, 남한 사람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의 잘못에 분개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는 날이 오기를 염원한다.
무채색의 우중충한 거리가 활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변화하고 아이들의 얼굴이 윤기가 나고, 활기차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손을 맞잡고 그들의 집에 초대되어 같이 먹고 잠자며 동일한 민족으로서의 기쁨을 나누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우리가 좀 잘 산다는 자만이 아니라 북한 주민의 가난을 고민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열린 마음으로 다시 만나기를……. 더 나아가 그들도 제주도와 경주를 관광하며 남한의 정취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빌며 장전항을 떠났다.
지금(2018.10.8) 금강산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다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된다면 금강산을 안내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행동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한국, 북한, 미국의 관계가 호전되어 다시 금강산을 밟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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