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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와 방탄소년단평행선 눈 2018. 9. 13. 14:23
김소희와 방탄소년단
요즘 십대나 이십대들이 방탄소년단 같은 가수들에게 가지는 관심과 열광은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이다. 방탄소년단은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 ‘빌보드 200’에서 두 번이나 1위에 오르는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요즘 인기 있는 가수들은 단순히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파격적인 의상과 춤 그리고 현란한 조명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잘 포장된 상품 같아서 더욱 관심을 끄는 듯하다. 노랫말은 너무 빨라서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고, 쉴 새 없이 흔들어 대는 동작으로 인하여 현기증이 나는 듯하다. 그런 모습에 도취되어 함성을 지르는 아이들을 보며 세대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노래의 종류는 달라도 시대마다 거기에 열광하고 즐기는 모습은 그리 큰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없다. 어릴 적 고향 마을에서 어른들이 창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동네 부잣집에서 일을 거드는 꼬마둥이(일을 할 때 심부름을 시키거나 어른들을 거들게 하던 나이 어린 머슴의 일종)가 창을 잘했다. 얼굴에는 마마 자국이 있고, 나보다 나이가 너댓 살 위인 아이였는데 여름철이면 어른들이 그 아이를 데려다 모정에서 창을 하게하곤 했다. 그 아이가 구성지게 가락을 뽑으면 어른들은 연신 손장단을 치거나 추임새를 넣으며 같이 즐겼다.
채만식의「태평천하」에서도 우리 조상들이 창을 무척 좋아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윤직원 영감의 비서 격인 대복이가 매일같이 이발소에 나가 라디오 프로그램을 보고 명창 대회나 공연 프로그램을 알아 와야 한다.
대복이가 만일 실수를 해서 윤직원 영감한테 그것을 알으켜 드리지 못한 결과, 혹시 한 번이라도, 그 끔찍한 굿(구경)에 참례를 못하고서 궐을 했다는 사실을, 윤직원 영감이 추후라도 알게 되는 날이면, 그때에는 대복이가 집안 가용을 지출하는 데 있어서 (가령 두 모만 사야 할 두부를 세 모를 샀기 때문에) 돈을 오 전 가량 더 지출했을 때만큼이나 벼락 같은 꾸중을 듣게 됩니다.(태평천하 21쪽)
이처럼 조상들은 지금 십대들이 랩과 춤이 혼재된 노래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창을 좋아했던 것 같다. 유럽의 클래식 음악가들이 귀족의 후원을 받아서 음악 활동을 했듯이, 우리 나라 부자들도 창을 하는 사람이나 기생을 수시로 불러서 노래를 듣고 후한 대가를 주었던 것 같다. 때로는 여자 명창을 후처로 들이고, 경제적인 후원자가 되어 명창을 키우고 소리를 즐겼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의 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영동이 작곡한 ‘한네의 이별’을 김성녀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 감칠맛 나는 꺾임과 휘어짐에 푹 빠지기도 했고, 한밤에 어쩌다 텔레비전에서 듣는 가야금이나 거문고 소리가 유별나게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서편제에서 남매가 상봉하며 서로를 알아보면서도 끝내 아는 체를 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부르던 마지막 장면의 소리에 감동을 받아서 그 소리가 누구의 소리일까 하고 궁금했는데 나중에 김소희의 소리임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김소희의 민요 CD를 하나 구해서 들어보니 그때의 감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민요가 아닌 창을 한 번 들어보고 싶어서 CD 두 장을 구해서 가끔 듣는다. 김소희는 고인이 되었지만 그녀가 우리 음악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궁금했었다.
1970년대 초 세계 민속 음악 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들이 신의 소리라고 극찬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김소희의 어떤 면이 사람들에게 신의 소리라는 찬사를 들었을까하고 궁금했었는데 그 의문을 풀 수 있게 되었다.
김소희는 천부적인 목을 갖고 태어났다고들 한다. 판소리는 원래 쉰 목소리와 같이 껄껄하게 나오는 소리인 수리성을 기본으로 한다. 이 수리성만으로는 너무 탁하여 건강하고 딱딱한 소리인 철성을 겸한 소리인 천구성을 가장 이상적이고 천성적인 명창의 성음이라고 높게 친다. 이 천구성 안에 슬픔을 억눌러 내면적인 한을 나타내거나 슬픔과 한을 폭발시켜 통곡을 나타내는 소리를 애원성 또는 서름제라고 한다. 애원성은 아름답고 높은 소리이며 슬픔이 처절하여 고독과 한이 얽힐 때 사용하는 효과적인 창법이다. 김소희의 목이 이런 최상의 소리를 낸다고 자타가 인정한다.(동편제 서편제를 아우른 소리꾼 만정 김소희 김수남 디새집 271쪽)
김소희가 이처럼 우리 한을 표현하는 애원성의 바탕 위에 피를 토하는 각고의 노력으로 신의 소리라는 찬사를 듣는 경지에 이른 듯하다.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늘 한을 품고 살았던 조상들의 피가 면면히 흐르고 있는 후손들임을 부정할 수 없다.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민초들은 수난과 수탈 을 당하며 뼈 속까지 스민 한을 안고 살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를 표출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게 창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방탄소년단의 노래에 열광하는 우리의 청소년들도 나이가 지긋해지면 저절로 파고드는 우리의 소리에 어쩔 수 없이 손장단을 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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