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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눈물
세상을 살다보면 가끔 눈물을 흘려야 할 일이 생긴다. 분을 참지 못하여 우는 경우, 주변 사람이 죽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여 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환희에 겨워서 우는 경우, 분에 넘치는 행운이 찾아와서 우는 경우도 있다. 즐거운 일과 슬픈 일은 서로 상반되는데 북받치는 감정은 한줄기인 듯 즐거워도 울고, 슬퍼도 눈물을 흘리게 된다.
남자보다 감정적으로 민감한 여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더 많다. 어렸을 적 사람이 죽어서 상여가 마을 앞을 지날 때면 골목마다 사람들이 나와서 구경을 하곤 했는데, 남자들은 망자(亡者)에 대한 명복을 비는 정도였지만 여자들은 늘 머릿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곤 했다. 천수를 다하고 죽는 사람이면 늙어 죽는 것이 서러웠고, 갑자기 병이 들어 죽는 경우에는 돈이 없어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안타까웠고, 젊은 사람이 집안의 반대로 결혼을 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에는 자식들이 많았던 시절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더 많은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눈물이라는 게 늘 약자가 자신의 처지가 한스러워서 흘리는 경우가 많은데 지난날 여자들의 삶은 억압과 고난의 연속이어서 자연히 눈물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사람의 죽음 외에도 여자들이 눈물을 흘려야 할 이유는 많았다. 고추 당초보다 맵다는 시집살이에서 남몰래 흘렸던 눈물은 이 땅에 산 여자들이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굴레였다. 갓 시집온 새댁이 겪어야 하는 층층거리 시댁 어른, 나무라는 시어머니와 뒤에서 눈을 흘기는 시누이, 보통 열 명이 넘는 대가족의 식사준비, 풀 먹이고 다듬이질을 해야 하는 여름 베옷들, 솜을 놓아 손수 만들고 입을 때마다 동정을 달아야하는 무명옷들, 절구통에 찧어야하는 먹을거리 준비, 뙤약볕을 아랑곳하지 않던 들일 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시골 살림에서 여자들이 알게 모르게 쏟아야하는 눈물은 끝이 없었다.
오랫동안 이런 눈물의 유전자가 이 땅의 여자들에게 이어졌는지 생활 방식이 바뀐 현재도 우는 것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으뜸이 아닌가 한다. 60대 이상의 여자들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시대로 뒤바뀌는 것을 지켜보며 살았다고 할 수 있는데 우는 모습은 어김없이 옛날 모습이다. 남북 이산가족의 만남에서 서로를 껴안고 통곡하는 모습, 사람이 죽었을 때 온 세상 슬픔을 다 짊어진 듯 소리 내어 우는 모습에서 과거의 한이 공존하는 울음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남이 보는 앞에서 몸부림을 치며 우는 모습은 자신의 슬픔을 남에게 알리고 싶은 무의식 적인 일면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서럽게 살아온 내용을 울음을 통하여 분출하고 다른 사람에게 알아달라는 광고의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평소에 내놓고 말하지 못하던 사연을 누구의 간섭도 없이 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 울음이 시간을 맞추어서 우는 장례식에서 절묘하게 발휘되곤 하는데 외국인이게 그게 불가사의한 일로 느껴진다고 한다.
시집살이가 사라진 요즘 여자들은 예전처럼 억압과 구속 때문에 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보다는 영화, 소설, 연극, 텔레비전 등을 통해서 주인공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나의 동반자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텔레비전에서 장애인을 입양하여 기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선행을 보고 감동을 받는다는 것은 마음이 열려있다는 증거이고, 눈물의 유전자가 아직 살아서 꿈틀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해도 다른 사람의 행위를 통하여 공감을 할 수 있는 작은 이타심이 살아 있음을 말한다. 반면 그런 저희 엄마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놀리고 있는 싸가지 없는 자식들은 이미 측은지심의 유전자가 소멸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겪지 않아서 자신 이외에는 남의 어려운 처지를 보고 눈물을 흘리기에는 감정이 메마른 세대이다. 반대로 이벤트의 성향이 강한 일에서는 눈물 흘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2002년 월드컵 동안 십대 소녀들이 주축이 되어 거리를 메운 붉은악마들의 엄청난 물결이 이를 실증하고 있다. 십대, 이십대의 소녀들이 가지가지 아이디어를 발휘하여 태극기 패션으로 거리를 메우고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흘리던 눈물은 그들의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흘린 눈물과는 차이가 있다. 하다.
누구에게 억압을 받았거나 설움을 당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고 거대한 붉은 물결 속에 자신을 한 일원으로서 동질성을 확인하고 마취되듯 분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일시적이고 충동적인 지금의 젊은 여성들의 성향이 잘 나타난 한바탕 굿마당이라고 할 수 있다. 군중 심리와 기대 이상의 승리에 도취된 신명나는 한바탕 축제로 기억되는 사건이다. 여기서 십대 소녀들이 흘린 환희의 눈물은 구세대 여자들이 흘리는 한스런 눈물과는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거리에서 스마트 폰을 손에 쥐고 친구들과 통화를 하며 거리를 활보하는 여학생들의 발랄한 모습, 방탄소년들을 환호하며 눈물을 흘리는 자유로운 모습 등은 미래 이 나라 여성들이 미래에 보다 주도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예고편을 보는 듯하다. 아직은 여성의 차별이 사라지지 않았고, 주말이면 광화문에서 여성 차별 폐지를 외치는 여성들의 외침이 이어지고 있지만.
세상의 변화는 여자들이 흘리는 눈물의 종류도 달라지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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