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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고요히, 나뭇잎처럼시 2018. 12. 25. 20:15
여자들, 고요히, 나뭇잎처럼
김정란
그 계곡 산모롱이 틈새로 여자들의 나뭇잎, 나뭇잎,
뾰족하게, 연약하게,
손가락 끝마다 엷은 연두 손톱 달고
하늘 ………… 넓기도 해라,
늘 떠나기만 하는 없는 생
어긋나 뒤로 돌아선 하늘 가만히 껴안는다데
차마 떠나가는 하늘에 상처 날까 봐
아무 말도 않고 손톱 안으로 밀어넣고
여자들의 나뭇잎들 이 생 안에서
정성으로 흔들리며 간청하네
열 번의 생 내내 그랬다네
조심조심 엷은 연두 손톱으로
여자들은 자꾸 가슴을 누르고 눌러다네
땅에 붙박힌 그녀들의 몸
이윽고 투명해질 때까지
실금 상처 안으로부터 떠올라
선연한 무늬를 만들었다네
난 안다네 그 무늬 이룰 때까지
그 상처들 얼마나 하늘을 향해
조용조용 말을 걸었는지
그 산속으로 여행 갔다가
그 계곡에 나뭇잎들의 사원이 섰다는 말을 들었네
난 들었네
그 여자들 모여 서서
나지막이 부르는 노랫소리
그녀들의 투명한 몸에서
수정처럼 울리는 저녁 종소리
신의 옷자락 산모롱이 스치고
그 엷은 연두 손톱들 안으로 안으로
눈물 흘리며 땅 깊은 곳까지 쓰다듬는 소리
그 땅 깊은 곳에서 문득 하늘 열리는 소리
우주, 내 아들, 내 가여운 아들
열 번의 생쯤 더 지나면
그 나무들 그 계곡 떠날 것도
나는 아네 그러나 알면서도
지금 아픈 그 나무들 때문에
나는 우내………… 지금 숨죽여 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