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과 이별
산부인과에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면 산모가 있는 입원실에 꽃이 배달된다. 그 꽃을 보고 자신과 관계가 없는 아기일지라도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빈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꽃과 인연을 맺게 된다. 아기가 자라서 학교를 졸업할 때나 생일 때도 꽃을 선물한다. 결혼을 할 때는 예식장이 온통 꽃으로 장식되어 신부와 신랑이 꽃길을 지나 주례에게 가고, 주례를 향해 걸어가는 신부는 손에 꽃을 들고 걸어간다. 신랑의 가슴에도 꽃을 꽂는다. 모든 행사에 꽃이 빠지지 않는다. 또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평소 꽃에 별 관심이 없던 무딘 남성도 여자에게 갈 때 꽃을 들고 간다. 꽃은 남녀의 사랑을 이어주는 좋은 매개체이다. 이승과 작별하는 장례식장에도 어김없이 화환이 늘어서 있다.
꽃은 이렇게 즐거울 때나, 축하할 때나, 슬퍼할 때 그리고 여자에게 호감을 사려고 할 때도 늘 함께 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가끔 꽃잎 비빔밥을 파는 식당도 있다. 또 꽃잎을 채취한 후 말려서 꽃잎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나는 꽃잎으로 만든 비빔밥이나 꽃차를 좋아하지 않는다. 꽃잎을 먹는다는 게 마음을 편치 않게 하기 때문이다. 옛날 선비들이 봄놀이를 가서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만들어 먹으며 풍류를 즐겼다는 이야기는 상시적으로 꽃을 먹는 요즘 사람들에 비하면 나름 운치라도 있다고 해야 할까.
2년 전 친구가 갑자기 자기가 사는 광주로 좀 오라고 했다. 일이 있어 다음 주에 가면 안 되느냐고 물었더니 꼭 그날 와 달라고 해서 일을 미루고 갔다. 친구가 자기가 보던 책 몇 권과 정성들여 쓴 서예로 만든 족자 등을 주며 가져가라고 했다. 또 화분도 한 개 함께 주었다. 처음 보는 꽃이었다. 이름을 물었더니 벌레잡이제비꽃이라고 했다. 화분에 벌레잡이제비꽃이 5개 심어져 있었는데 2개는 좀 크고 3개는 작았다.
친구가 준 물건들을 가지고 오며 친구가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친구는 폐가 좋지 않았다. 폐가 좋지 않아서 평소 입원과 치료를 반복했지만 의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끊지 못했다. 친구의 폐가 회복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짐작할 수 있었다. 친구와 곧 이별이 올 것 같아 친구가 상태가 좀 나을 때 밥이라도 같이 먹으려고 광주에 두 번을 더 갔다. 그 후 친구는 내가 가겠다고 해도 오지 말라고 했다. 몸이 더 나빠져서 나를 만나는 것도 어려운 상태가 되었거나 아니며 상태가 나빠진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가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친구는 통증이 심해 병원에 입원해서 진통제를 맞는 일 이외에 달리 손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죽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려고 병원을 물어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중에 친구 부인에게 물었더니 친구가 알려주지 말라고 했다며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알려달라고 해서 병원으로 갔다. 친구는 나를 반갑게 맞았지만 어서 가라며 침대에서 일어나 문으로 밀어내다 시피 했다.
친구는 내가 만나고 온 지 오래지 않아 결국 이승과 하직하고 말았다. 친한 친구가 세상을 먼저 가고나니 사는 게 참 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나 친척들과 이별하는 것과 또 다른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가야 할 길이고 조금 먼저 가고 조금 나중에 가는 차이라고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이 생에 부여한 단 하나의 법칙이 바로 죽음이다.’라는 소설가 잭 런던의 말을 다시 떠올리며 죽음에 대한 위로를 삼았다.
친구가 준 화분에서 5개의 벌레잡이제비꽃 중에서 3개는 시들시들 하더니 하나씩 죽어갔다. 안타까웠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남은 2개는 씩씩하게 잘 자라더니 작년 12월에 꽃대가 올라와 꽃이 피었다.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 날마다 가까이 가서 바라보았다. 2018년 12월 마지막 날 친구 아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2018 끝날. 소중한 인연들이 생각나네. 아버지와는 오랜 세월 가까이 지내며 정을 쌓았는데 많이 그립네. 아버지는 이 시대의 진정한 선비셨네. 혹 앞으로 아버지 추모 행사가 있으면 알려주게. 평소 좋아하시던 양촌리 커피 한잔 나누고 싶네. 새해에는 더 많은 행복과 건강이 가득하기를 비네. 아버지 친구.’
12월 들어 피기 시작한 벌레잡이제비꽃 쉬이 시들지 않고 한 달 넘게 피었다가 어제 시들었다. 친구는 갔지만 꽃은 내년에도 또 피어 내 곁으로 와 친구를 대신 하게 될 것 같다.
친구를 생각하며.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석희와 심석희 (0) 2019.01.11 경제 어쩌란 말인가? (0) 2019.01.10 그랜드캐년의 일출 (0) 2019.01.03 Adieu My 2018 (0) 2018.12.31 이국종 교수와 영리병원 (0) 2018.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