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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려는 사람에게독서 2019. 1. 31. 12:26
시를 쓰려는 사람에게
고은, 최영미 두 시인이 재판을 하고 있다 한다.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에 대해 고은 시인이 명예훼손이라며 고소를 해서 민사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고은 시인은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 단골처럼 오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고, 최영미 시인 역시 나름 우리나라 시단에서 명성을 쌓은 시인이다.
이 재판이 다른 성 관련 재판과 다르게 형사가 아닌 민사재판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영미 시인이 고소를 한 게 아니고 고은 시인이 명예 훼손으로 고소를 했기 때문이다. 최 시인이 고 시인의 지저분한 행동에 대해서 ‘괴물’이라는 시를 발표하기도 했고, 텔레비전에 나와 증언을 하기도 했다.
어떤 시인의 말에 의하면 고은 시인의 ‘60-70년대 손버릇, 몸버릇’은 소문이 자자했고 그런 행동을 대가의 천재성으로 정도로 묵인 했다고 한다. 최 시인의 문제를 고 시인의 행동을 문제 삼은 건 1992년과 2008년이라고 한다. 30년과 10년이 지난 이야기를 꺼내는 최 시인의 의도도 그렇거니와 이를 문제 삼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고 시인의 행동도 좀 그렇다.
문학세계에서 먹이사슬처럼 얽혀 서로 끌어주고 키워주는 끈끈한 연대감은 가끔 보도되는 언론을 통해서도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이름을 날리는 기성 시인들의 마음에 들어야 문단에 등단을 할 수 있으니 문단으로 입성하려는 무명의 시인들은 기성 시인들이 갑질을 해도 참아내야 했을 것이다.
예전에 유명 일간지 신춘문예 작품에 당선되었던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고 시인과 최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문학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기행은 관행처럼 되었고, 시를 쓰는 여성들 중에는 시를 절실한 마음으로 쓰는 게 아니라 허영으로 쓰는 사람들도 있다.”
그 말을 들으니 참 씁쓸했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기성 시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문학에 입문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어떠했을지 추측할 수 있었다.
시를 쓰는 사람의 마음은 그래도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아름다움과 너그러움 그리고 탐미적인 혜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인의 과거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대가의 나이브한 행동이라고 눈을 감았던 사람들의 관점이나 최 시인의 늦은 폭로도 그렇게 용기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두 시인의 마음이 무척이나 협량하고 옹색하게 느껴지지는 건 왜 일까?
시를 쓰려는 사람은 릴케의 충고를 마음에 담아두어야 하지 않을까?
‘시는 외부로부터의 평가가 아니라 시를 쓰게 되는 시인의 마음가짐, 즉 내적인 동기다. …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내면을 돌아가십시오. 그래서 당신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 그 내면의 동기를 찾아보십시오. 그 동기가 당신의 마음속 뿌리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것인지 확인하도록 하십시오. 만약 시를 쓸 수 없게 된다면 당신은 죽을 수밖에 없는지, 그 정도로 시 쓰기의 동기가 철저한 것인지 스스로 알아보십시오. 깊고 고요한 밤, 스스로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이렇게 물어 보십시오. “나는 써야만 하는가?”’ ( 「고전평설」 김영민)
두 시인 넓은 아량으로 그들이 쓴 시처럼 아름다운 마음으로 화해하고 시의 발전을 위해서 함께 갔으면 좋겠다.
삶
고은
비로 우리가 가진 것이 없더라도
바람 한 점 없이
지는 나무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또한 바람이 일어나서
흐득흐득 지는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우리가 아는 것이 없더라도
물이 왔다가 가는
저 오랜 썰물 때에 남아 있을 일이다.
젊은 아내여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가지며 무엇을 안다고 하겠는가.
다만 잎새가 지고 물이 왔다가 갈 따름이다.
꿈 속의 꿈
최영미
어젯밤
꿈 속에서
그대와 그것을 했다
그 모습 그리며
실실 웃다
오늘 아침 밥상머리
돌을 씹었다
그대에게 마음 한끝
콱!
깨물며 태어난
눈물 한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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