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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가위, 형의 사과
    산문 2019. 9. 16. 12:43

     

    한가위, 형의 사과

     

     

               한가위 3일 전 고향 마을 형 집에 갔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산소가 고향 마을에 있어 성묘도 할 겸 갔다. 한가위 날은 복잡해서 오고 가기가 번거롭기 때문에 미리 갔다.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님 산소에 성묘하고 형의 집으로 갔다. 마치 조카들도 와서 오랜만에 얼굴을 보며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한가위나 설 같은 명절이 아니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일가들이다. 사람들이 명절이면 도로가 막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붐비는 도로 사정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찾는 걸 마다하지 않는 까닭도 그럴 것이다.

     

     

       고향이라는 말이 내게 주는 의미는 따뜻함, 익숙함, 편안함, 안락함, 그리움, 유년의 추억 등 바쁜 일상에서 잠시 여유를 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고향의 유년시절은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하면 아름다운 그림이고 정겨운 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게 유년의 그 곳은 어머니, 아버지, 형제, 산과 들, 들길을 걸어 다니던 학교, 가난, 겨울의 눈, 여름의 방죽, 불화, 친구들, 놀이 등 많은 이야기들이 까마득하게 먼 그렇지만 또렷하게 살아나는 생명력을 가진 삶의 보고이기도 하다. 어두운 이야기, 슬픈 이야기도 이제는 다 녹아들고 발효가 되어 달콤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젊은 날의 폭풍우 몰아치는 감정이 잦아들고 격하던 감정들도 다 발효되고 녹아들어 이제는 잔잔하고 달콤한 효소로 변해버린 유년시절을 감정의 동요 없이 미소로 바라보게 되었다. 유년시절에 시골에 고향이 있다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듯하다.

     

       앞길로 들어서면 고향 마을 앞 늙은 팽나무가 있는 정자가 있고 그 앞으로 넓은 호남평야가 펼쳐진다. 뒷길로 들어서면 다니던 중학교와 그 앞에 방죽이었던 곳이 지금은 개간이 되어 논으로 변했지만 아직도 내 마음에는 여름의 연꽃과 겨울의 얼음판이 있던 방죽이 보인다.

     

       형이 갓 찧은 찹쌀 한 포대, 새로 농사지은 고추를 빻아 만든 고춧가루 10, 더운 뙤약볕에서 캔 고구마 한 상자, 들기름 한 병을 차에 올려준다. 그리고 나 주려고 사과를 일부러 땄다며 가자고 가라고 한다. 철이 일러 아직 덜 익은 부사였다. 볼품없고 작은 사과였지만 형의 마음과 정성이 담긴 사과였다. 맛이 없어 보이고 작은 것이지만 그 사과에 담긴 형의 마음은 따뜻했다.

     

     

       집으로 와 형이 준 사과를 한 개 먹어보니 아직 익지 않아 시원하고 아삭거리는 달콤한 부사 맛이 나지 않았다. 좀 더 놓아두면 맛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그러자 마님이 사과도 매실처럼 발효를 시켜 음식을 만들 때 넣으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해서 사과에 혹시 묻어 있을지도 모르는 잔류 농약을 씻어내려고 물에 담가두었다가 껍질 채 잘라 발효 사과를 만들어 두었다. 사과가 발효되면 내 유년의 추억처럼 달달한 맛을 지닌 형님 표 사과 발효액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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