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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을 바리게이트로 이끄는 자유여신’과 메두사의 뗏목독서 2019. 10. 24. 15:09
‘민중을 바리게이트로 이끄는 자유여신’과 메두사의 뗏목
소설이나 시의 주제는 그 작품을 읽으며 느낄 수 있지만 그림에 숨어있는 의미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잘 알 수 없다. 그림을 그릴 당시의 사회상이나 작가의 설명이 없으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구도, 색체, 분위기 등을 통해 그 그림에 대한 미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의 도움을 직접 받지 않더라도 그의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런 사전 지식이 없이 그림을 보게 된다면 그림의 이면에 숨어 있는 의미를 알 수 없이 그저 수박 겉핥기식의 감상에 머무르게 된다.
들라크로와의 ‘민중을 바리게이트로 이끄는 자유여신’이라는 그림을 보게 될 때 여러 가지 의문을 가졌었다. 민중을 이끌고 있는 여성이 상반신이 노출된 채 오른 손에는 삼색기를, 왼손에는 총을 들고 있다. 여성이 혁명적 전사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데 그 주위에는 다른 여성이 보이지 않고 어린이부터 부르주아, 노동자나 농민으로 보이는 사람들만 보인다. 혁명에 나서는 사람들이 계층을 망라해서 함께 하는데 그럼에도 선두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여성 한 사람뿐이다. 그것도 가슴이 다 드러난. 이게 무슨 상황일까?
그러나 이 여자는 어엿한 자신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으며, 지금도 프랑스 백 프랑짜리 종이돈을 장식하고 있는 여자임을 안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계간지 『창작과 비평』에 수록된 「역사의 상징」이라는 간명한 논문 덕분이다. 그녀는 우리나라로 치면 만 원짜리 배춧잎에 그려진 세종대왕쯤 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안느이며, 프랑스 혁명기의 핵심적인 사상인 자유을 상징하는 여신으로 미국의 뉴욕에 서 있는 자유의 여신과 쌍둥이 자매라는 사실을 알 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유의 여신을 마르안느라고 명명한 까닭은 마리안느야말로 우리네 순이, 분이처럼 흔하디흔한 프랑스 민중의 이름이며, 이 민중적 친숙함을 통해 혁명의 계급적 본질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이고자 한 기획의 결과이며, 이 대중성에 바탕을 두고 마리안느는 프랑의 혁명의 이념을 유감없이 상징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쓰는 문학 에세이」 김상욱. 101-102쪽)
또 하나의 그림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을 보고 두 그림의 구성이 유사하다는 것을 느꼈다. 프랑스 해군 전함 '메두사 호'. 이 배의 함장은 샤마레 백작이라는 왕당파 귀족이었는데 배가 침몰한 위험에 처하자 400명(과학자와 기술자, 공무이과 가족들, 200여명의 군인, 그리고 일꾼을 포함해 모두 400여명으로 이루어진 개척대를 한 배에 태웠다.)의 승무원 중 하급선원이 149명이 탄 뗏목과 보트 사이에 맨 줄을 잘라버리고 도망쳤다고 한다. 뗏목에 남은 사람들은 13일만에 구조되었는데 겨우 15명이 살아 있었다고 한다. 뗏목에 남겨진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약한 사람들을 죽이고, 병들어 죽어갔다. 식량이 바닥나자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인육을 먹으며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 뗏목이 구조될 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바로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이다.
두 그림에서 깃발, 죽은 사람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사람들의 중심에서 한 사람이 서 있다. ‘메두사의 뗏목’에서는 지나가는 배를 향해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이, ‘민중을 바리게이트로 이끄는 자유여신’에서는 마리안느가 앞에 서서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 두 화가가 친구였다고 하니 두 그림이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연은 아닌 듯하다. 아무튼 두 그림에서 앞에서 사람들을 향해 깃발을 든 상징적인 모습은 자유를 향한 거대한 외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능한 함장에 게, 부패한 권력을 향해 분연히 일어선 민중들의 처절한 외침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화가들이 삼일독립 선언의 장면에 유관순을 자유의 여신처럼 화폭에 담아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그림이 될까 궁금하다. 과감하고 역동적인 모습의 유관순을 여신처럼 표현한 그림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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