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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정 스님의 자취를 찾아
    그곳에 가면 2015. 5. 27. 16:08

     

    불일암에 올 때는 혼자 오라하고

     

      순천역에서 송광사 가는 좌석버스를 탔다. 송광사 입구에 도착하니 잔뜩 찌푸렸던 날씨가 기어이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우산을 펼쳐들고 청량각(淸凉閣)에 이르러 의자에 잠시 앉아 있으려니 바위를 때리며 흐르는 물소리가 가슴 속으로 시원하게 스며든다. 청량각이라는 의미를 알려주는 듯하다. 빗방울이 떨어져도 질퍽이지 않는 길을 따라 걷다가 송광사로 가지 않고, 돌로 된 다리를 건너니 감로암(甘露庵)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불일암을 가는 길을 몰라 우선 가까운 곳부터 가보려고 길을 따라 올라가니 울창한 편백나무 숲이 왼편으로 나타나고 오른편으로 대나무 숲이 이어진다.

      빗방울은 더욱 굵어지며 왕대나무 잎에 떨어지니 고요하기 그지없는 숲속이 수런거린다. 비가 오기 때문인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걸어가니 발자국소리가 동행이 되고, 우산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등과 다리로 떨어지며 같이 가자고 한다 암자를 혼자 가는 길이 외롭지 않다. 레오나르드 다 빈치가 이렇게 말했다던가.

      홀로 있을 때 나는 온전히 혼자다.

      벗과 함께 있을 때는 반쪽이 나다.

      여럿이 있을 때는 나는 없다.

     

      한참을 더 걸으니 감로암이 보인다. 문 안으로 들어서니 거인이나 앉았음직한 아주 큰 나무의자가 공적 속에 외로운데 뜰에는 석등이 추연하게 비를 맞고 있다. 원통문을 지나 이층으로 오르니 관음전의 문은 닫혀있고, 추녀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만 시멘트 바닥에 요란하게 떨어진다. 눈을 들어 앞을 보니 조계산 줄기는 보일 듯 말 듯 희미하여 우리의 삶처럼 불투명하기만 하다. 산문을 나서니 연못에는 수련과 부들이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감로암을 지키고 있다.

     

      불일암 가는 길을 몰라 다시 조금 내려오니 화장기 없는 젊은 여인이 올라와서 길을 물으니 다시 감로암으로 가자고 한다. 연못 바로 옆으로 좁은 길을 따라 대숲이 우거졌는데 그 길을 가리킨다. 그 길을 따라 얼마를 오르니 불일암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길을 따라 걸으니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고 가파르게 경사가 졌다. 가파른 길을 따라 걸으니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난다. 오른쪽 길은 국사로라는 이정표가 있는데 앞쪽 길은 표시가 없다. 한참을 망설이다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다시 길이 넓어지며 내리막길이 된다. 소나무 잔가지가 늘어졌는데 소나무 향이 짙게 풍긴다. 앞을 보려고 해도 숲이 시야를 가리고 길이 굽어 있어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길을 잘못 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왕 선택한 길이니 끝까지 가보려고 발길을 재촉하니 문득 대나무로 만든 문이 보인다. 흡사 시골 사립문 같아 보이는 산문이다.

     

      문을 막 넘어서니 신우대가 양옆으로 우겨져 속인들에게 쉽게 속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하다. 신우대 우거진 길을 지나니 바로 거기에 불일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단정하고 간결하며 기품이 있다. 생전의 법정 스님의 모습을 닮았다. 결기 있고 강직한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종교의 벽을 허물며 모든 사람에게 관용과 자비를 베풀던 고승의 모습.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진정한 스님이었던 고귀한 자태를 닮은 듯하다.

      작은 요사채에서 한 스님이 쏟아지는 빗속에 웬 불청객인가 하고 쳐다보는데, 화단에 옥잠화 한 포기가 하얀 꽃을 피운 채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 해탈의 염원으로 좌선을 하는 듯하다. 불일암에 가까이 가니 벽 앞면에 소박한 나무판자에 쓰인 이런 시가 먼저 길손을 맞는다. 법정 스님이 남긴 것이라고 생각하며 가면히 읽어본다.

     

      살어리

      살어리 랏다

      청산에 살어리

      랐다

      멀위랑

      ᄃᆞ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 랏다.

     

      이십여 년 전 법정 스님이 손수 지은 암자다. 암자란 철새들의 둥지 같은 곳이라고 할까. 수행자들이 잠시 머무는 곳으로서 거기에는 그들의 무소유 자국과 영혼이 배어 있다. 암자로 가는 길 김선주

      그래서 일까. 암자는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모습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잠시 부도 앞에 서서 탑에 낀 이끼가 비를 맞고 살아나는 모습을 본다. 선승들의 영혼들이 살아나서 깨우침을 주는 듯하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삶과 죽음이 여일한 그래서 흔들림 없이 살다가 물같이 바람같이 가면 좋으련만. 이런 경지는 끊임없는 수행과 고행 뒤에 다다른 고승들이나 이르는 경지인가. 속세의 일상 속에서 범인들이 맞는 죽음은 괴롭고 아프다.

     

      불일암을 나서려는데 요사채의 부엌에서 들어올 때는 보이지 않던 두 보살이 점심을 준비하고 있고, 방에는 스님 셋이 앉아 있다. 한 스님이 밖으로 나오기에 길을 물었다. 거기에는 길이 없단다. 길이.

      “감사합니다. 스님, 안녕히 계십시오.”

      “비가 오는데 여기까지…….”

      산문을 나서는데 빗방울이 신우대에 숲에 부서지면 열반송을 남긴다.

      “불일암에 올 때는 비가 오는 날 혼자서 오라.”

     

      이전까지 기독교와 불교도 사이에 바람직한 대화의 길이 트이지 못한 그 원인을 찾는다면, 상호간에 독선적인 아집으로 인한 오해에 있었을 것이다. 출세간적(出世間的)인 사랑은 아집이 아니고 보편적인 것이다. 보편적인 사랑은 이교도를 포함한 모든 이웃에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무소유진리는 하나인데 중에서 법정)

     

      우리의 직위나 돈이나 재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는 결정된다.

      현실이 곧 우리의 스승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오늘과 같은 시련이 없다면 우리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할 때, 우리 자신과 후손의 건전한 삶을 위해서라도 마땅히 거쳐 가야 할 관문이라고 여겨진다.

      소욕지족(小欲知足), 작은 것과 적은 것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크고 많은 것에서보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있다. 크고 많은 것을 원하면 그 욕망을 채울 길이 없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스며 있다.

     (오두막 편지가난을 건너는 법 중에서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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