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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섬진강·쌍계사·불일암·대원사 벚꽃그곳에 가면 2021. 3. 29. 14:57
‘낡은 말뚝도 봄이 돌아오면 푸른 빛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핀란드 속담이 있다고 한다.
3월 말이 가까워지자 화사한 꽃보라가 날리기 시작한다.
이 땅에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벚꽃이 피는가
싶었는데 봄바람 따라 꽃잎이 아파트로 찾아와 나비처럼 날고 있다.
순천 동천 산책길에 벚꽃을 만난다. 해마다 동천둑을 따라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핀다. 늘어진 가지가 물 위에 나르시스처럼
그림자를 만들고 꽃잎이 그 위로 진다.
구례 섬진강 문척에서 시작한 벚꽃길을 따라 화개장터와 연결되는
남도대교로 간다. 꽃 꽃 꽃! 꽃물이 든다. 강에도 길에도 내 몸에도.
쌍계사 벚꽃길로 접어든다. 오래된 수묵색 줄기에
가지가 계곡물에 닿을 듯 손을 내밀었다. 늙은 나무 어디에
그렇게 화사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고 분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벚꽃길이다.
구례와 곡성을 연결하는 압록을 지나 보성강을 따라 송광사로 간다.
송광사로 가는 길옆에도 벚꽃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내친김에 법정 스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불임암으로 올라간다.
누군가 암자 앞에 프리지아를 꽂아 놓았다. 흑임자, 깨, 들깨강정이
고요히 자리하고 풍경소리를 듣고 있다.
이번에 불일암에 내려가면서 수선 다섯 뿌리를
가지고 가 돌담 아래 심어주었다. 이 일을 마치고
나니 숙제를 하고 난 후처럼 마음이 아주 홀가분했다.
이 수선에는 사연이 있다.
(오두막 편지 중에서. 법정 스님)
송광사를 나서 보성 대원사 벚꽃길로 발길을 돌린다. 이 땅 어디에서도
봄이면 피어나는 벚꽃. 너무 많고 흔해서 물릴 것도 같은데 사람들은
또 벚꽃을 찾는다. 아마도 피는 모습도 화사하고 지는 것도 사치스러워
찾는 것이 아닐까. 벚꽃은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지고이네르바이젠’ 같다.
온화하고 조용하며 섬세하게 피었다가 격렬하게 화려하게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그렇다.
벚꽃길 초입으로 들어섰다가 뒤돌아 나올 때
벌써 지고 있는 꽃잎
생은 덧없이 가는
짧은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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