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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산 해미읍성을 찾아간 까닭그곳에 가면 2022. 5. 9. 17:23
15세기부터 17세기 서구 그리스트교에서는 교황, 국왕,
귀족, 학자, 문화인들이 한통속이 되어 이른바 마녀사냥
이라는 잔혹한 일을 저질렀다. 어느 시대나 권력을 잡은
사람은 그 권력을 잃을까 싶어 노심초사했다.
권력을 잡고 있을 때 재해나
질병이 번졌을 때 그 원인을 엉뚱한 곳으로 몰아가려고도
했다. 마녀사냥도 기득을 지키려는 자들의 시선과 관심
돌리기의 전형적인 유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녀사냥이라는 잔악한 재판을 할 때 힘 없고 약한 여자를
대상으로 했다. 마녀로 지목한 사람을 잡아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문을 저지린 후 마녀로 지목하여 불태워 죽였다.
그때 죽은 사람이 수만 혹은 수십만 명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 천주교가 들어오자 왕은 양반과 평민으로 유지되는
유교적 신분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보고 천주교 신자들을
죽였다. 정조, 순조, 현종, 고종에 이르기까지 왕들을 천주교 신자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 그중 한곳이 서산 해미읍성이다.
해미읍성을 조선시대 호서지방( 제천 의림지 이남의 충청도)의 군사권을
가진 곳으로 바다에 출몰하는 왜구를 방어하고자 세운 성이다.
이 곳에서 왜구가 아닌 천주교 신자들을 죽인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바로 병인박해(1866년(고종3년)1월)다. 이때 2000여 명의
천주교 신자가 순교한 아픔을 가진 성이다. 불과 150여 년 전에
많은 천주고 신자가 죽은 이곳은 지금 그때의 아픈 역사만을
간직한 채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슬픔과 아픔은 남은 사람이 대신하고 있을 뿐.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한했을 때 이곳을 방문해서 순교한
신자들을 위해 기도했으니 죽은 혼령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해미읍성은 이순신 장군이 1579년 충청병마절도사의 군관으로 10개
월 동안 근무한 곳이기도 하다.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다 고문한 회화나무)
(병사들이 훈련하고 문객들이 시를 지은 청허정 凊虛亭)
(청허정 옆 소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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