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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령 천북 폐목장의 보리밭
    그곳에 가면 2022. 4. 30. 14:49

     

     

                           보리밭

                                                안도현

     

    이 땅에 아직 보리밭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내릴 수 없는 깃발이 있다는 뜻이다

    이 땅에 아직 보리밭이 있다는 것은

    땅투기꾼 독점재벌에게는 도저히

    빼앗길 수 없는 한 뼘의 분노가 있다는 뜻이다

    이 땅에 아직 보리밭이 있다는 것은

    밟아도 밟아도 되살아나는 희망

    우리가 청춘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땅에 아직 보리밭이 있다는 것은

    적에 대한 증오가 이렇듯 푸르고

    동지에 대한 사랑이 이만큼 싱싱하다는 뜻이다

    이 땅에 아직 보리밭이 있다는 것은

    이 땅에 아직 보리피리를 찬란하게 불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보리 새싹이 건강 식품으로 변해 여성들의

    다이어트 제품으로 팔리고,

    보리밭의 일렁이는 청보리가 프로 사진작가들의

    촬영 대상이 되고,

    예전 가난 속에서 보리밥으로 연명을 했던

    세대에게는 과거 속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추억의 대상이 되어버린 보리밭.

     

     

    천북 폐목장이 보리밭으로 변한 후 사람들이

    찾고 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밭 사이로 난 황톳길을 걸어 올라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이들 손을 잡고 걸으며 가난했던

    어린시절 보리밥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 해주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넓은 보리밭에 살랑이는 봄바람이 

    싱싱한 청보리를 춤추게 하고 있는

    풍경은 회색도시 직장인에게는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만남이 될 수 있겠다.

     

     

    날마다 같이 생활하면서도 좋은 마음으로 만나지 못하고

    서로 미움이 쌓인 동료에 대한 언짢은 마음이 쌓였다면,

    청보리밭

    사잇길을 걸으면 청보리를 닮아 푸근하게 풀어질 수도 있겠다.

     

     

    지금 한창 푸르고 싱싱한 보리밭을 찾아 시선과 마음을

    바람에 일렁이는 청보리에 고정한 채 걸어본다면

    마음을 씻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천북 폐목장 청보리밭 황톳길을 천천히 걸어내려 오는

    뒤에서 4월이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 천북 폐목장을 가려면 보령 천북신흥교회를 검색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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