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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가 받지 못한 자유(간디 학교)
    새와 나무 2017. 12. 13. 14:53

     

    허가 받지 못한 자유(간디 학교)

     

         

        ‘허가 받지 못한 자유(간디 학교)’는 경남에 있는 대안 학교인 간디학교를 TV에서 취재한 제목이다(2001.07).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자식에 대한 가장 큰 관심은 어떡하면 일류 대학에 가는가 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대학입시 제도는 수시로 바뀌고 있지만 공교육에서 학생들에 대한 교육 방법은 별로 변하지 않고 있다. 교육 과정이 해방 후 벌써 일곱 차례나 바뀌었지만 학제나 방법에서는 처음과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경제 발전으로 각 교실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할 수 있는 통신망의 구축, 실물화상기, 텔레비전, 오버헤드 슬라이드 등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교과 내용이나 방법은 획일적이고 단선적인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열린 교육의 거센 바람이 한바탕 몰아치더니 요즘에는 그것마저도 슬그머니 사라지는 듯하다.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시작한 모든 일이 그러하듯 열린 교육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았다. 열린 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연구 학교나 시범학교를 했는데 그런 학교들이 일반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교사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실적주의로 인하여 애초에 실패를 담보로 한 채 교사들의 점수 따기에만 기여를 했을 뿐이다.

       문제는 획일성이다. 열린 교육이 도입되면 그걸 하지 않는 교사는 교육을 망치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교육 당국이나 장학방침 그리고 관리자들의 파시즘적 사고방식은 그것이 실패로 끝났을 때 결국 학생들만 희생을 당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실 붕괴도 결국은 다양성을 추구하지 못하는 획일성이 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대학 입시에 중 고등학교의 교육을 맞추다보니 학생들의 개성이나 다양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전 과목을 잘하는 초인을 만들려고 하니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학교를 가지 않거나 가더라도 겉돌 수밖에 없다. 자연히 수업은 몇 사람을 위한 찬란한 쇼로 끝나고 나머지 학생들은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틀에 박힌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학교가 바로 간디학교였다. 타율적인 공부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을 때 공부를 하도록 기다려주고,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하는 학교였다. 타율적이고 획일적인 교육에서 자율적이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 방법을 실천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그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그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보통 사람의 상상을 넘고 있었다.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열린 교육은 이런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교육에서 개선해야 할 것이 많지만 먼저 열린 교육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열린 교육의 본질은 개성과 다양성에 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열린 교육을 말하면서 획일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개성과 다양성을 살리지 못하는 교육은 미래 지향적이지 못하다. 이런 측면에서 간디학교는 지금 공교육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6만 명의 학생들에게 복음을 주는 학교라고 판단이 되었다. 폐교되어 방치된 시골의 학교들을 활용하여 이런 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진다면 우리 교육에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전 과목 제일주의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는 기초와 기본을 기르는 교육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중고등학교에서는 특정 교과나 어떤 분야에 특성을 나타내는 학생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하는 교육 과정과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실 붕괴를 간디학교 같은 대안 학교를 활용한다면 상당부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공교육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교육을 책임진 사람들과 학자들이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오히려 손을 대면 댈수록 교육은 수렁 속으로 빠져 드는 듯하다. 획일성과 학교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앞서가는 이론이 교육 현장에서 혼란만 가져오고 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경남교육청의 태도였다. 대안학교가 일반 학생들에게 주는 영향이 좋지 못하다고 보조금도 없애고 사법당국에 고발했다고 한다. 간디학교는 곧 폐교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여 그 학생들의 장래를 열어주는 대안학교가 다른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굴절된 시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교육이란 지식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이 사회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측면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간디학교 같은 대안 학교는 국가가 아닌 뜻있는 교사들이나 민간 단체에서 세우고, 교육하면 효율적일 것 같다.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는 이런 학교를 적극 후원해서 공교육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많은 학생들에게 삶의 지평을 열어줄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2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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