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엄지족과 메일족
    새와 나무 2017. 12. 14. 15:12



    엄지족과 메일족

     

     

     

     

      “, 이따가 멜 보내.”

      “너 멜 몇 통이야. 700통인데.”

      우리 반 아이들 일상의 대화이다. 아이들은 집에 돌아가서 시간만 나면 친구들과 메일을 주고받는다. 메일은 이제 아이들의 생활에서 의사소통 이상의 의미를 가진 삶의 조건이자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리 저리 머리를 굴리며 멋진 표현을 찾기 위해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는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마음 내키는 대로 쓴다. 맞춤법이나 어법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즉흥적으로 자판을 두드려서 몇 자 안 되는 메일을 보내고 안도한다. 예전에 온갖 정성을 들여 쓴 편지에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고, 며칠씩 우체부를 기다리며 답장이 오기를 고대하던 애틋함과 기다림의 미학을 요즘 아이들이 한사코 거부한다.

     

      나는 학교에 갔다 와서 바로 computer를 켰다. 바로 메일을 검사하기 위해서(읽기 위해서)이다. mail에 들어가 보니 390통쯤에서 안 읽은 편지가 7개였다.

       편지를 다 읽고 친구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내가 답장을 보내면 받은 친구들이 즉시 답장을 날리는 애들 중에서 꼭 그런 아이가 한 명 있다. 바로 박시은.. 그래서 나는 시은이한테 메일을 자주 많이 보낸다. ㅋㅋ 헤헤. 그리고 신경을 돋구는 애들 임체정! 정지운 이 애들은 신경질 난다. 체정이는 그래도 좀 빨리 보내는데 지운이는 늦게 보낸다. 그래도 참아야지 어쩌겠어.

               ‘참는 자에게 복이 있느니라.’

     

       요즘 아이들의 현실이 잘 나타난 우리 반 아이의 일기다. 메일의 답장이 늦어지는 친구들의 행동을 참지 못하고 신경질 이 난다고 했다. 느림과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속도와 편리성만을 추구하는 세대들이 자라고 있다. 빠르다는 것은 편리하지만 졸속과 부실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 이 아이들이 끌어갈 미래의 사회가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다. 어쨌든 우리의 아이들에게 메일 족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될 것 같다.

       예전에 미국의 영화를 보면 어린아이들이 컴퓨터를 장난감 가지고 놀 듯하면서 생활하는 장면을 보고 부러워했었는데, 지금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그 때의 영화 장면을 보는 듯하다.

       아이들에게 컴퓨터는 필수품이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검색어에 낱말만 입력하면 어떤 것도 척척 대답해 주고, 오락, 학습 문제 등 만능의 해결사가 되어 버렸다. 오락 게임을 다운받아서 오락에 재미를 붙이고, 친구들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컴퓨터에 매달려 있다.

       초등학생들이 컴퓨터를 통해서 친구들과 대화를 하지만 중 고등학교 학생들은 휴대폰으로 메일을 주고받는다. 길을 가면서도, 버스 속에서도, 음식을 먹으면서도 휴대폰을 한 손으로 쥐고 엄지손가락을 놀려 귀신처럼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이른바 엄지족이다. 그 실력은 김수녕 선수의 양궁 시위를 당기는 수준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지는 않을 것 같다. 가히 신산(神算)의 경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 젓가락을 사용하며 능숙해진 손가락 근육으로 작은 휴대폰의 문자를 눌러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솜씨는 한민족의 후예답다. 앞으로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 보내는 경연대회가 열린다면 세계 양궁을 평정하듯이 세계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듯하다.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에게는 이런 아이들의 생활 방식이 염려스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빠른 것만을 추구하는 아이들은 충동적이고 불안정하게 보인다 실제로 요즘 아이들은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는 행동에 미숙하다. 즉흥적이고 기분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하니 성숙된 행동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미국에서 살다 귀국한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형편없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라고 한다. 규칙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을 배려할 줄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미국이야말로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것 같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총을 난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사건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이런 험악한 사회는 사람들의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사고방식에서 온다고 본다. 바로 디지털 문화가 만들어낸 필연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회를 우리가 꼭 닮아 가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문화가 발전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지만 미국 사회의 성찰과 성숙이 없는 저질 행동이 그대로 답습되어 간다고 할 때 그 결과가 두렵기만 하다.

       선진의 생활 방식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런 부정적인 면을 단절시킬 수 있는 방법은 우리 문화의 장점인 공동체적 삶의 방식과 인내하는 정신을 살려 가는 길뿐이라 고 판단된다.

     

    2001.07

      * 지금은 컴퓨터가 스마트폰으로 바꾸었고 아이들에게도 어른에게도 필수품이 되었다. 거기에 몰입하는 시간이 독서이고 문화이고  여가활동이 된 시대.

     

     

     



    '새와 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른 풀 우거진 길(성두에서 향일암 가는 길)  (0) 2017.12.19
    마늘과 가사  (0) 2017.12.14
    공창(公娼)과 남창(男娼)  (0) 2017.12.14
    허가 받지 못한 자유(간디 학교)  (0) 2017.12.13
    향기  (0) 2017.12.13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