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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셸 깽 소설 「처절한 정원」
    독서 2024. 12. 1. 16:12

     

     

     

    이 소설은 2000년 출간되어 일 년 넘게 프랑스에서 베스트 셀러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등에서도 저작권이 팔렸다고 한다.

     

    겨우 60쪽인 이 소설이 이렇게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드골 정권에서 파리 경찰국장, 지스카르 데스땡 정권에서는 예산 장관까지 지낸 파퐁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나치 정권에서 치안 책임자로 있으면서 1,500명의 유대인을 체포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낸 것이 들통 나 1999년에 재판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는 일제에 부역한 사람들이 해방 후 중요한 직책에 앉아 떵떵거리고 살았지만, 프랑스는 나치 정권의 꼭두각시인 비시 정권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을 철저하게 색출하고 단죄하였다. 파퐁이 재판받기까지 무렵 16년 걸렸지만, 프랑스 국민과 정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부역한 사람들을 처벌하지 못하고 그들이 오히려 해방 후 권력에 오르며 오늘까지 이어지며 토착왜구들이 큰소리를 치는 불행한 현실에서 살고 있다.

     

     

    파퐁 재판이 있고 난 뒤 이 소설이 출간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도 베스트 소설이 된 이유라고 한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삐에로가 되어 무대에서 사람들을 웃기려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가족은 가장 가깝고 친밀한 존재이지만, 타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애증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어렸을 때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서 증오하고 수치스럽게 여긴다.

     

    여기 나오는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원만하고 대화가 잘 이루어지는 경우 그리 흔치 않기는 하지만. 그 이유가 프로이트가 말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때문에 어린 시절 잠시 생길 수도 있겠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어머니와 아들과의 관계처럼 매끄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아버지의 행동 때문에 부끄럽다. 아버지가 어릿광대 삐에로를 하며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무대 위에서 혼자서 따귀 때리고,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시늉을 하며 눈물이 나도록 고독한 원맨쇼를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삐에로를 소고깃국에 떠 있는 마늘을 먹어야 하는 것보다 더, 수염 난 할아버지가 뽀뽀하는 것보다 더 싫어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가족에게 증오심과 수치심을 안겨주었던 삐에로 아버지.

     

    그렇게 싫어했던 아버지를 존경하게 된 것은 삼촌에게서 아버지가 나치 정권에서 레지스탕스 요원이었다는 것을 들은 이후였다.

     

    아버지와 삼촌이 변압기 폭파 인물이라는 의심을 받고 구덩이에 갇혀 있을 때 빵과 감자를 주었던 베른이 아버지와 같이 초등학교 교사였고 삐에로였다. 그리고 아버지와 삼촌이 역의 변압기를 사람이 없는 줄 알고 폭파했는데 역무원 니꼴이 있었다. 니꼴은 화상을 입어 죽게 되었지만, 자신이 범인이라고 거짓 자백을 해 두 사람을 구해주었다. 이 사실을 두 사람은 나중에 알게 된다. 아버지는 그들에 대한 고마움과 참회의 마음으로 삐에로가 되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 사실을 안 후 증오의 삐에로가 존경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자신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삐에로가 되어 활동할 결심을 한다. 그가 파퐁의 재판에 삐에로가 되어 나타난다. 주인공이 삐에가 된 것은 아버지에 대한 추도사이고 헌사이고 존경이라고 생각한다. 아픈 역사에서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냈던 파퐁을 16만에 재판하게 되는 날 삐에로가 되어 나타난 아들의 행동은 상징적이다.

     

    왜 삐에로일까?

    아버지의 레지스탕스 활동과 희생한 사람에 대한 참회 그리고 기억의 반추 즉 아픈 역사와 그 질곡 속에서 저지른 자신의 실수에 대한 아픔 되살리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죽은 사람을 잊는다는 것은 죽은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말처럼 아픈 역사와 실수한 개인의 아픔을 잊어서는 안 된다. 수치스럽고 아픈 역사를 간직한 채 그 상처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일은 미래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다짐이 될 것이다. 이 소설도 소년이 온다처럼 아픈 역사에 와 인간의 아픔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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