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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독서 2024. 10. 29. 09:47

     

     

    우리나라에 갑자기 독서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태풍의 눈에는 한강의 노벨상이 있다. 우리로서는 너무 늦은 노벨 문학상이다. 그간 몇 명의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에 후보에 올랐고 상당한 기대도 했지만 끝내 우리 작가는 호명되지 않았다. 나는 우리나라 작가 중에 노벨 문학상 수상을 받았으면 하고 바랐던 아니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작가가 몇 명이 있다. 박경리, 황석영, 조정래, 최명희, 고은, 신경숙 등이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소년이 온다는 노벨 문학상을 받기 전에 읽었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지금 마지막 장을 넘겼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전에 읽었던 책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재미가 없었다. 독자의 처지에서는 소설이 엄청 심오한 주제와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재미가 있어야 쉽게 읽을 수 있다. 이 점에서는 대단히 불친절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단순히 픽션이라고 할 수 없다. 1948년 제주 4·3사건과 19507월에서 9월 사이에 벌어졌던 한국의 킬링필드라고 할 수 있는 보도연맹의 학살 사건으로 이어지는 기간의 비극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진태(장동건)의 약혼녀 영신(이은주)가 보도연맹에 관련된 사람들은 색출하는 청년단장(김수로)에게 끌려가 죽임을 당한 안타까운 장면이 있었다. 바로 그 보도연맹사건이 이 소설의 4·3사건과 연결된다.

     

    소설의 시작은 화자인 경하의 악몽으로 시작된다. 수천 그루의 크고 작은 검은 나무들이 기울거나 휘어져 있는 모양이 수천 명의 남녀와 어린아이들이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나무들이 묘비명처럼 보이는데 그곳은 육지가 아닌 바다였고, 거기에 왜 무덤을 쓴 걸까 의문을 가지는데 물이 들어온다.

     

    경하는 꿈에 보았던 그 검은 나무들을 적당한 장소를 찾아 수천 그루 대신 아흔아홉 그루무한으로 열리는 숫자…―를 심고 먹칠을 할 생각을 했고, 사진과 다큐멘터리 작가인 인선에게 제안한다.

     

    함께 통나무들을 심어 먹을 입히고. 눈이 내리길 기다려 그걸 영상으로 담아보면 어떻겠느냐고.’

     

    이 부분이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수천 그루의 휘고 기울어진 크기가 다른 나무는 제주 4·3사건에서 희생당한 어른과 아이들의 모습을 암시하는 것처럼.

     

    이렇게 꿈으로 시작된 소설은 작가와 사진사로 만나 친구가 된 인선의 제주 생활과 엄마가 겪은 비극을 다루고 있다. 13살에 마을이 불타고 가족이 몰살당한 슬픔을 당한 후 어른이 되어 유일하게 살아남은 오빠를 찾기 위한 인선 엄마의 고통과 그걸 지켜보는 인선의 아픔 그 아픔에 공명하며 느끼는 경하의 참담이 소설의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절친인 인선의 어머니가 4·3사건의 고통을 천형처럼 짊어지고 생활하며 오빠를 찾기 위해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수소문하지만, 결국 보도연맹사건에 연루된 사람들과 함께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인선 어머니는 4·3사건과 보도연맹사건에 관련된 자료들은 모아놓는다. 인선은 4·3사건 다큐멘터리를 작성하기 위해 그 자료에 더해 수많은 자료를 모아놓는다.

     

    12월 하순 인선이 경하가 말한 통나무 세우는 일을 준비하기 위해 나무를 자르다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자르는 사고를 당한 후 서울로 와 입원한다. 인선이 경하에게 문자를 보낸다.

     

    지금 와 줄수 있어?

     

    인선은 경하에게 앵무새에게 물과 먹이를 주어야 살릴 수 있다며 제주도 집에 가 줄 것을 부탁한다. 바로 지금 공항으로 가서 오늘 안에 집에 도착해야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거센 눈보라가 치는 날이었는데 제주도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를 탈 수 있었고, 공항에서 한라산 중산간에 있는 인선의 집까지 가는 길은 눈보라로 인해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다. 가는 길에 건천으로 굴러떨어지며 휴대폰까지 잃어버려 고립무원의 상태다. 전기와 물도 나오지 않는데 위경련까지 겹쳐 실신할 지경이었다. 평소 경하는 습관성 위경련을 앓고 있다. 경하는 인선이 간절히 살기를 바랐던 앵무새 아마의 상태를 알아본다.

     

    부드러운 손끝에 닿는다.

    더 이상 따스하지 않은 것이.

    죽은 것이

     

    나무 아래 눈을 헤치고 아마를 묻은 후 나(경하)는 위경련으로 심한 고열로 떨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오후에 눈을 떴을 때 열과 통증, 구역질과 두통 그리고 악몽이 사라졌다.

     

    정신이 든 경하에게 죽은 아마가 찾아오고, 서울 병원에 누워있는 인선이 찾아온다. 어떻게? 한강 작가의 소설은 시공과 육체를 넘나드는 혼이 존재한다. 소년이 온다에서도 2장은 죽은 동호의 혼이 육체가 썩고 불에 타는 모습을 지켜보며 서술한다. 이 소설에서도 죽은 앵무새가 찾아오고, 서울 병원에 있는 경하가 찾아온다. 꿈이 아니니까 혼이다.

     

    그때부터 경하는 인선의 만든 4·3사건 다큐멘터리를 떠올리고, 인선이 엄마가 겪은 4·3사건 비극과 그 후의 오빠를 찾기 위한 노력과 정부의 탄압과 방해를 겪는 수난의 일생을 서술한다.

     

    인선은 경하에게 밤에 통나무를 심을 곳을 가자고 한다. 눈이 쌓였고 또 내리는 밤에. 그 밤에 가야 하느냐고 묻는 경하에게 그렇다고 말한다. 종이컵 밑을 십자로 그어 꽂은 작은 양초를 들고 경하가 따라나선다. 인선이 눈 속을 걸으며 말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

    인선에게 4·3사건은 그렇게 각인되어 있었다.

     

    경하에게 인선의 어머니는 어떻게 기억을 남았을까?

     

    볼펜 촉을 힘껏 누르고 모든 획을 꺾어 쓰는 사람. 포기하자. 이감된 날짜를 기일로 하자. 섬으로 돌아오는 배에 혼자 올라 방금 들은 말을 곱씹는 사람. 마침내 수만 조각의 뼈둘 앞에 다다른 사람. 머리를 숙이고, 굽은 허리를 더 구부리고 어둠으로 들어가는 사람

    이 말속에 국가가 저지른 폭력과 은폐 그리고 탄압으로 얼룩진 생을 인선 어머니의 압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눈 속을 앞서가던 인선이 말한다.

    잠깐 눈 좀 붙일게, 정말 잠깐만.’

     

    소설은 상징적으로 끝난다. 인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 경하는 정말 눈 속을 걷다 쓰러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아직 사라지지 마.

    불이 당겨지면 네 손을 잡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네 손이 잡히지 않는다면, 넌 지금 너의 병상에서 눈을 뜬 거야.

    다시 환부에 바늘이 꽂히는 곳에서. 피와 전류가 함께 흐르는 곳에서.’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눈 속 어둠에서 어렵게 촛불이 켜지자 심장처럼, 꽃봉오리처럼,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이라고 마지막 문장이 끝나는 것은 그래도 한 가장 희망을 말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강 작가의 표현 흉내)

     

    이 소설에서 한강의 문장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죽으러 왔구나, 열에 들떠 나는 생각한다.’처럼 주어 가 뒤에 있다. 나는 느낀다. 생각한다. 묻는다. 읽는다.처럼 와 서술어가 뒤에 붙어 강조되나까, 앞에 읽은 내용을 자세히 이해하려면 다시 읽게 된다. 이런 문장이 수시로 나오는데 한강 작가만의 독특한 문장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실제 인물, , 현실, 과거, 가상의 세계, 사실, 생각, 환상 등이 혼재되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거기에 제주에 사투리까지. 그냥 술술 읽어지는 소설이 아니었다. 한강의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는 한강의 소설을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의 문학 세계는 우리 세대가 흉내 낼 수 없는 감수성이 있다. 굉장히 신화적이고, 아름답고 서정적인, 그러면서 리얼리즘 문학으로서는 사실적인 것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굉장히 신비로운 세계를 다룬다. 대개 문학이나 소설은 윤리 문제를 다루는데, 그 아이가 쓴 소설을 보면 인간의 폭력에 대한 반성이랄까, 폭력으로부터 시행되는 인간들의 슬픔과 아름다운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폭력으로 인한 슬픔, 신화적, 서정적은 아버지의 말대로다.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가 딸의 작품을 가장 잘 분석했겠지만, 작별하지 않는다는 리얼리즘 소설이라기 모더니즘 소설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모더니즘 소설의 특징인 인물의 심리 묘사가 많고, 시제와 시간 표현의 모험성, 인간과 혼의 만남 등으로 구성된 소설이니까. 이 소설을 끝까지 읽는 데는 인내심이 필요한 난해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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