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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숙 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
    독서 2024. 1. 23. 13:34

     

    정지아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먼저 읽었고,

    신경숙의 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뒤에 읽었다.

    두 소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아들이 아닌 딸이 아버지의 삶에 대해 회고하는

    내용, 두 소설에서 아버지는 그 당시 아버지들에게서

    보기 힘든 온화하고, 넓은 마음으로 이웃과 주변

    사람에게 따뜻한 정을 베푸는 아버지, 이념의 희생자

    이지만 반대 이념을 가진 사람까지도 적대시하지 않는

    아버지, 일반적인 사람들이 받은 피해보다 더 혹독하게

    갚아주는 장삼이사의 모습이 아닌 너무도 휴머니스트인

    사람이다. 과음하거나 노름하는 그 시대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모범적인 아버지로 그려진다.

     

    정지아의 소설 속 아버지

    처럼 신경숙 소설의 아버지도 가난하지만 넉넉한 마음을

    가진 따뜻한 사람이다. ‘덩치가 산만 하고 귀가 어둡고 셈을

    할 줄 모르던 웅에게 글을 가르치고, 살길을 열어주었고,

    다리 아래서 비렁뱅이로 지내던 낙천 아저씨를 데려와 웅이

    대신 소를 돌보게 하며 황소 한 마리를 낙천 아저씨 몫으로

    주었던 아버지였다. 두 소설을 읽으며 두 작가는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다고 생각했다.

     

     

    두 작가의 나이는 거의 비슷한 육십 전후의 나이인데,

    나이쯤의 아버지는 거의 일제강점기에 출생하여 6.25, 4.19,

    5.16, 광주민주화운동, 87년 서울의 봄 등 격동의 세월을

    겪으며 신산한 삶을 살았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부를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일했던 아버지이다.

     

    아버지에게 갔었어에서 나()는 딸이 교통사고로 죽는 장면을

    목격한 후 5년 동안 아버지에게 가지 않았다가 어머니가 암

    수술하려고 서울에 오자 혼자 남은 아버지가 걱정되어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와 함께 지내며 아버지의 일생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어려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전염병으로 이틀 사이에 잃었고,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후 6.25 전쟁에서 인민군이 양민을

    학살할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작은아버지가 장손인

    아버지를 군에 보내지 않기 위해 산지기에게 보내 오른쪽

    검지를 작두에 절단한다. 장성갈재에서 형처럼 다정하게

    지내던 박무릉에게 저지른 일로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한이 많은 삶을 살지만, 결코 여섯 명의 자식들에게 내색하지

    않고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

     

    큰오빠가 리비아에 갔을 때 아버지와 주고받은 편지를 읽으면서

    몰랐던 사실까지 알게 된, 두 사람의 애틋한 부자 관계,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한 후 방황하고 있던 둘째 오빠를 무주에서

    데리고 와 자식들에게 큰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여러 개의

    회초리가 다 부러지도록 매를 때린 후 둘째 오빠가 다리를 절뚝이며

    전주로 후기 시험을 보러 가던 장면, 날마다

    전화하며 살갑게 구는 셋째 오빠 그리고 나(), 약사인 넷째

    여동생 이삐, 손볼 것이 있으면 남겨두었다가 같이 하는 막냇동생과의

    소소하고 아련한 추억들을 되새김질한다.. 요즘 보기 드문

    아버지와 자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매주 누군가는 고향으로 부모를 찾아와 같이

    지내는 모습이라니!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는 것도 싫어서 바쁘다며

    해외여행을 떠나는 자식들이 많은 세상인데.

     

    딱 한 번 아버지의 일탈이 있었다.

    아버지가 서울로 돈을 벌러 가 일했던 입암면에 살던 갈치 음식집 사장 딸 순옥이

    데모하다가 경찰에게 끌려가려는 것을 동생이라며 구해온 후 정이 들어,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가출해서 익산 허술한 단칸방에서 솥 한 개만을 걸어놓고

    살고 있는 아버지를 고모가 솥단지를 들어 메치며 아버지를 데리고 왔다.

     

    아버지 일생에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아픔은 박무릉이었다.

    철도원이 되기 위해 막무가내기로 공부를 가르쳐 달라며 밤마다

    찾아가 공부를 하며 정이 들었던 사람이었는데, 장성갈재에서

    빨갱이의 위협에 그를 죽음의 계곡으로 밀어버린 후 평생 화인으로

    남았던 박무릉에게 몰래 쌀과 일용품을 어김없이 때가 되면 갔다

    놓다가 20년 후 반정부 투쟁으로 위험에 처한 셋째 아들을 맡기며

    재회하게 되는 장면. 아버지에게 평생 아픔으로 남았던 박무릉에게

    나를 통해 연하장을 쓰며 차마 하지 못했던 아픔을 고백한다.

    내가 갈재에서 형을 골짜기 아래로 미러습니다. …… 그랫던

    형이 살아 잇었을 때 나는 내 논에 대고 맹세햇습니다. ……

    모든 것을 다 알고도 일생 동무를 해주어 고마웠습니다.’

    아버지는 처음이지 마지막 고백과 용서를 이렇게 빈다.

     

    ()는 아버지와 함께 지내며 병들고 늙은 아버지 모습을

    보며 애처로워한다. 아버지가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오며

    보여준 삶의 궤적들을 되새김질하며 미처 몰랐던 사실들도

    알아가며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 사랑,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소설이다. 사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부모에

    대한 삶의 저 밑바닥까지 들여다본 적이 없을 것이다.

    막연히 고생했다는 생각 저 너머 아버지의 처한 현실, 마음,

    감정, 이성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부모니까

    당연히 해 줄 것을 했고, 자식이니까 받을 것을 받았다는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소설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 신뢰, 의존 거기에 아버지 주변 인물과의

    관계에서 아버지의 생각과 행동까지 깊이 생각한 본 적이 없는

    보통 사람에게 이런 소설은 새삼스럽게 늦은 반성과 회한을

    느끼게 한다.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아버지에게 바치는 추도사였다면

    신경숙의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아버지의 자서전 혹은 회고록

    같다고 생각했다.

    신경숙은 평범한 일상의 일들을 흥미롭게 깔끔하게 서술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베스트 소설 작가로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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