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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독서 2024. 10. 17. 12:43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후 독서 광풍이 불고 있다. 좋은 일이다.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잉크 냄새가 향긋한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책 속에 빠지는 것은, 잊고 있었던 아니 어쩌면 잃어버렸던 학생 시절로 되돌아가 빠삭한 종이 감촉과 문자가 내뿜는 작가의 숨겨진 생각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일이니까.
왜 소설을 읽어야 할까?
‘소설은 우리에게 원하는 것 만을 주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소설이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것들을 줄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시와 소설에서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받은 로버트 워렌)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은 지켜본다. ……
공기 틈에 숨어 있던 빗방울들이 일제히 튕기어 나와, 투명한 보석들같이 허공에 떠서 반짝이기라도 할 것처럼.’
소설은 이렇게 아름다운 시처럼 시작된다.
뒤에 전개될 처절한 슬픔과 고통을 짐짓 모른 척 시침이라도 떼는 건 아닌지.
1장(어린 새)에서는 동호가 진수, 선주, 은숙을 도와 시신을 관리하는 동호를 화자(작가)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여기에는 담담한 묘사가 있을 뿐 고통과 아픔이 없는 잔잔한 일상처럼 그려진다.
자기 집에 세 들어 사는 친구 정대를 찾아 나선 중학교 3학년 동호는 자신도 모르게 5·18의 비극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게 된다. 수혈을 하러 병원에 갔다가 일손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시청으로 간 선주와 은숙이 일손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듣고, 총, 대검, 몽둥이에 맞아 머리가 함몰되고, 팔다리가 잘리고, 자상 자국이 부풀어 오른 몸과 얼굴에서 피와 진물이 흐르고, 창자가 터져 나온 시신이 부패하며 내뿜는 시취를 견디며 중학교 3학년이 감당하기에 너무 힘든 일을 기꺼이 해낸다.
동호는 끝까지 시청에 남았다가 진수가 어리니까 손을 들고 나아가면 총을 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손을 들고나오다가 계엄군이 쏜 총에 쓰러진다.
‘장교는 진수의 등에 발을 올린 채로
“씨발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란 말을 뱉으며 M16을 들어 아이들을 조준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아이들에게 총을 갈겼다. 아이들이 쓰러졌다. 동호는 그렇게 죽었다.
“씨팔, 존나 영화 같지 않냐.”
「지옥의 묵시록」에서 킬 고어 중령이 민간인 마을에 헬기로 네이팜을 쏟아부으라고 지시하고 양민을 학살한다. 부하들에게는 수상스키를 타라고 명령하고 그걸 즐기는데 이 부분에서 그 장면이 떠오르며 전쟁에서 군인들은 살인의 광기가 표출되며 쾌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장(검은 숨)에서는 동호의 친구 정대가 총을 맞고 죽은 후 시체가 옮겨진 후 자꾸만 늘어나 켜켜이 쌓이고 부패할 때, 군인들이 후퇴하며 불을 지르는 장면을 정대의 혼이 지켜보며 죽음을 알려주고, 누나와 친구 동호와 있었던 일을 회상한다.
‘내 얼굴이 거뭇거뭇 썩어가 이목구비가 문드러지는 걸, 윤곽선이 무너져 누구도 더 이상 알아볼 수 없게 되어가는 걸 나는 묵묵히 지켜봤어.’
정대의 혼은 육체가 불에 타 없어질 때까지 지켜본다.
3장(일곱개의 뺨)은 동호와 같이 있다 살아남았지만 신산한 삶을 사는 은숙의 이야기다. 계엄군이 시청으로 들어올 때 남자들이 여자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서 살았다. 그 후 재수해 대학에 들어갔지만 가정 형편으로 대학을 그만두고 작은 출판사에 취직한다.
그녀는 5·18 때의 죽은 사람들에 대한 트라우마로 고기를 먹지 못한다. 동료들을 그녀가 채식을 좋아하는 줄로만 알고 있다.
‘그녀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익어가는 순간을 견디지 못했다. 살점 위에 피와 육즙이 고이면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있는 생선을 구울 때는 눈을 감았다. 프라이팬이 달궈지며 얼었던 눈동자에 물기가 맺히고, 벌어진 입에서 희끗한 진물이 흘러나오는 순간, 그 죽은 물고기가 뭔가를 말하려 하는 것 같은 순간을 외면했다.’
이 모습은 그녀에게 시체들이 썩어갈 때 시취와 시즙이 나오는 장면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보안사에 원고를 검열받으러 갔을 때, 검열하는 사내가 그 새끼 있는 곳을 말하라며 뺨을 일곱 번이나 때린다. 아픔과 치욕을 잊기 위해 하루에 한 대씩 뺨을 잊기로 한다. 뺨 하나씩에 5·18의 기억과 살아가는 모습을 서술한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 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는 동호.
보안사의 검열로 시커멓게 된 대본을 가지고 연극을 하는 배우들.
시커멓게 지워진 부분을 말로 했다가는 지켜보는 형사들이 어떤 짓을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이는 배우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 동호야.’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
에. 다 쓴 음료수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동호는 은숙에게 그렇게 돌아오고 있다.
아직도 은숙에게 봄(자유) 찾아오지 않았고, 보안사 군인에게 이유 없이 뺨(폭력)을 맞으며, 5·18의 과거와 현재의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4장(쇠와 피)은 진수와 함께 군에 잡혀가 고문을 당한 교대를 다니던 대학생의 서술이다. 왼손가락 사이에 모나미 볼펜을 끼우고 비트는 고문이 반복된다. 손가락뼈가 보여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이 빨갱이라 명명한 사람들에게 허용된 것은 오직 미칠 듯한 통증, 오줌똥을 지리도록 끔찍한 통증뿐이라는 걸 알게 해 주고, 한 식판에 밥 한 줌과 국 반 그릇, 김치로 두 사람이 함께 먹도록 해서 ‘너 혼자 다 처먹으면 난 어쩌란 말이야.’라는 말이 나오도록 배고프게 만들어 싸우게 만드는 악랄한 폭력(때리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으로 갇힌 사람들의 영혼마저 병들게 했다.
반복되는 고문, 금지된 언어, 통제된 육체, 배고픔으로 인간에게 정신이나 영혼을 박탈하고 오로지 아픔을 느끼는 육체를 가진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악랄한 권력의 하수인들!
진수는 다른 사람보다 더 혹독한 고문을 당한다. 발가벗기고 손을 뒤로 묶은 채 풀밭에 버려두기, 책상 위에 성기를 꺼내놓고 몽둥이로 내려치겠다고 위협하는 등.
진수와 그 사람은 현실에서 원만한 삶을 살지 못한다. 둘은 가끔 만나 술을 마시곤 했지만, 어느 날 진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5장(밤의 눈동자)은 선주의 이야기다. 선주는 가난해서 공장에서 일하다 노동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회사에서 쫓겨나 광주로 내려와 양장점에서 일하다가 시청으로 간 후 은숙, 동호와 시체를 관리한다.
선주는 노동운동을 했던 빨갱이라고 잡혔을 때 다른 사람과 다른 고문에 시달린다. 그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30cm 자를 자궁에 찔러넣고 개머리판으로 짓이기는 고문을 당해 임신을 할 수 없다. 결혼했었지만, 그때의 트라우마로 남자를 가까이할 수 없다.
선주는 끊임없이 동호가 찾아오는 혼란을 겪는다. 꿈과 현실이 혼재된 채.
‘이상하지.
단지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을 뿐인데, 누군가 왔던 것처럼 기억해.
노동운동을 할 때 선주의 의식에 눈을 뜨게 해 주었던 언니이자 멘토였던 성희 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서성이며 말한다.
‘아니,
언니를 만나 할 말은 하나뿐이야.
부디 허락된다면.’
‘죽지 마.’
6장(꽃 핀 쪽으로)은 살아남은 가족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서울에 있었던 형은 동생에게 왜 동호를 끌고 나오지 않았다고 탓을 하며 싸운다. 둘은 그 후에도 서로 데면데면 정이 없이 생활한다. 어머니는 동호를 데리러 갔다가 순하디순한 얼굴로 6시가 되면 가겠다는 말을 믿고 그냥 돌아온 것을 평생 자책하며 살아간다.
폭력은 소설에서만 있는 것일까?
아니다.
이 소설의 제목 왜 ‘소년이 온다’일까? 소년은 죽고 돌아올 수 없는데. 이런 의문은 소설을 읽으며 해소되었다. 살아남은 진수, 은숙, 선주 그리고 가족에게 동호는 끊임없이 찾아온다. 육체나 혼이 아닌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꾸만 살아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에서 희생된 사람들 가족이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하고 사람들은 ‘잊지 않겠어요’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사람들. 5·18 민주항쟁을 겪으며 살아남은 사람은 죽은 사람들과 그때의 폭력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소년이 온다」는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고통을 이야기하는 소설이고, 다시는 이런 불행을 겪지 않도록 하자는 반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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