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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유정의 소설 「영원한 천국」
    독서 2024. 11. 14. 12:59

     

     
     
    정유정의 소설은 종횡무진 자유분방 하다고 할 수 있다.
    스릴러 소설로 볼 수 있는 ‘7년의 밤’, 재난 소설 ‘28’ 그리고 SF(science fiction) 소설인 ‘영원한 천국’을 만났다.
     
    한강의 소설이 폭력에 고통받은 사람들에 천착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한강 소설의 특징이 악기로 비유하면 감성을 섬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바이올린 같다고 한다면, 정유정의 소설은 감성보다는 명확한 울림을 주는 피아노 같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림에 비유한다면 한강은 난해한 추상파 그림 같다면, 정유정은 강한 색채와 개성을 나타내는 야수파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강의 소설은 재미가 없어 공부하듯 읽어야 하고, 정유정의 소설은 재미있어 그냥 읽으면 된다. 내 생각이다.
     
    정유정은 이 소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과학에 대한 내 지식은 미천하기 그지없다. 지식이라고 부르기도 낯 뜨거운 수준이다. 그래도 상상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상상만큼은 내 전문 분야니까. 상상 좀 한다고 경찰이 와서 잡아갈 것도 아니고.’
     
    크크크. 경찰이 와서 잡아가지는 않겠지만 재미있는 상상은 독자들이 잡아간다.
    인간은 영생에 관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별별 짓거리를 다 했다. 그렇지만 자연의 모든 생물이 그렇듯이 나면 죽는 것이 자연스러운 섭리다. 죽음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데는 성공했다.
     
    이 소설은 인간이 영원히 살겠다는 욕망과 그를 둘러싸고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해상은 어머니가 ALS(근위축성측색경화증-루게릭병)를 앓다가 죽은 후 새엄마가 들어오고, 생물학자인 아버지의
    각별한 관심 속에서 아버지의 조수로 생활한다. 해상은 그런 아버지가 부담스럽고, 새엄마의 그에 대한 염려가 부담스러워하여 거리를 두려고 한다.
     
    해상은 아버지를 따라 이집트에 갔다가 갑자기 아버지에게 바하리야 사막여행을 통보한 후 사막으로 가는 동행인 박제이를 만나 눈에 콩깍지가 낀다. 먼저 귀국한 해상의 집 앞에 여행을 중단한 제이가 나타난 후 두 사람은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 그러는 사이 해상도 어머니 유전자의 증오를 벗어나지 못하고 루게릭병이 점점 심해지고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죽음을 앞에 두게 된다.
     
    임경주는 유도도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동생 승주와 함께 자라는데, 아버지의 바람기로 부모는 이혼한다. 이혼 후 아버지는 동생 승주만을 편애하고 두 사람은 깊게 밀착되어 생활하다가 아버지 죽는다. 아버지가 죽은 후 동생은 삶의 무기력증에 빠져 방에 틀어박혀 게임, 애니메이션, 블록 쌓기에 빠진 채 방에서 나오지 않는 생활을 한다.
     
    아버지의 기일이었던 뜨거운 여름날 제사 음식이 택배로 오니까 잘 좀 받아놓으라는 말을 동생에게 전화로 부탁한다. 경주가 퇴근하고 집에 오니까 제사 음식이 대문에 그대로 있고 여름 날씨에 다 상한 채 그대로 있는 걸 발견한다. 한 번도 동생을 때린 적이 없었던 그는 동생에게 죽으라며 구타하게 된다.
    도수치료 팀장으로 잘 나가던 경주가 그날 지은이라는 물리치료사를 돕다가 사고가 나고, 병원에서 그만두라고 통보를 받은 날이었다.
     
    동생이 사라진 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얼마 후 용산에서 경찰의 연락을 받고 갔을 때 동생이 공원에서 병으로 죽었다고 알려준다. 
     
    경주는 동생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참지 못한 행동을 반성하며 깊은 회한과 고통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게 된다. 동생처럼 방에 틀어박혀 술로 생활하게 된다.
     
    승주처럼 무기력증에 빠져 있던 중 갑자기 임대로 살고 있던 집이 팔린다는 말을 듣고, 집을 사게 된다. 집을 구매할 때 진 빚을 갚기 위해 노숙자들의 수용시설인 삼애원의 경비원으로 간다. 거기에서 입사 동기인 해상의 애인 제이를 만나게 된다.
     
    미국의 거대 IT 기업 X는 인간의 영생에 관한 연구를 2차 동물 실험까지 성공한 후 3차 인간에게 적용하려고 한다. 실험에 필요한 인간을 구하기 위해 세계 각국 노숙자의 핸드폰에 룰라 티켓인 유심을 무작위로 심어 놓는다. 그들은 노숙자들을 필요할 때마다 흔적을 남기지도 않고 데려간다. 경주의 동생 승주도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죽는데 룰라로 데려갔다고 추측할 수 있다.
     
    ‘룰라’라는 가상 공간에는 현실에서의 기억을 그래도 가지고 간 후 자기 의지대로 영원히 살 수 있다. 아픔, 감정 심지어 홀로그램이지만 몸을 물리적 실체로 자각한 수 있다. 룰라로 가는 유심은 두 종류가 있다. 이주민용 유심은 룰라에서 불러야 갈 수 있고, 실험단 유심은 언제든지 원하면 갈 수 있다.
     
    드림시어터 설계자인 제이는 자신의 이주민 유심의 위치 추적 장치로 실험용 선수 2명이  삼애원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유심을 구해 해상을 롤라로 보내기 위해 삼애원으로 간다.
     
    실험용 유심을 구하려던 제이는 역시 유심을 노리던 관리팀장 일행에게 죽게 되고, 경주도 칼잡이에게 가슴에 칼을 맞았지만, 경비팀장 한기준과 주임 박정옥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베토벤은 삼애원에 매년 억 원대의 기부금을 내며 성악가였던 조카 랑이 언니와 특혜를 누리고 카페를 운영하며 생활한다. 제이가 죽은 후 삼애원에서 나와 실버타운으로 들어간다. 암이었던 베토벤은 제이의 애인 해상을 위해 칩을 양보하며 경주에게 칩을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다.
     
    경주는 실험용 유심을 해상의 아버지에게 주고 제이의 이주민 유심을 얻는다. 해상은 룰라에서 살아있던 때처럼 행동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드림시어터 사람들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설계자가 되었다. 그는 경주를 룰라의 세계로 불러들이기 위해 삼애원의 칼잡이로 위장하며 경주를 죽이려고하지만, 오히려 죽게 되고 다시 룰라의 세계로 복귀한다.
     
    해상이 경주를 룰라로 데려오려던 의도는 실패한다. 해상은 실패한 원인을 이렇게 말한다.
    ‘외피에 가려진 ‘무엇’이 있었다.’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려는 욕망이었다. 나는 이 욕망에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어쩌면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특별한 성질일지도 몰랐다.’
     
    경주는 상처입고, 고통받고, 일어서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의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살아야 한다.
    해상은 끝나지 않는 길을 가야 한다. 고통, 죽음이 없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영원한 천국에서 살아야 한다.
     
    소설은 육체는 없지만, 영원한 삶을 선택한 해상과
    고통과 아픔이 있는 유한적 삶은 선택한 경주.
    나에게 경주와 해상의 삶 중에서 선택할 수가 있다면 어떤 삶을 선택할까?
     
    소설은 SF 영화는 영상을 보여주는 장면에 몰입하며 따라가면 되니까 그냥 편안하게 보면 된다. 반면 SF 소설은 문자에 스스로 영상을 만들고 맘껏 상상하면서 자신만의 공간과 세상을 만들 수 있지만 시간과 생각을 훨씬 더 많이 투자하니까 개인마다 다른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정유정은 이 소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소설은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고자 하는 인간의 마지막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자기 삶의 가치라 여기는 것에 대한 추구의 이야기기도 하다. 이 욕망과 추구의 기질에서 나는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작가는 경주의 삶 즉 견디고 이기는 욕망인 야성을 탐구하고 그를 찾아가는 과정을 말하고 싶은 것 같다.
     

    ※ 소설을 읽을 때 차례를 잘 보고 읽어야 현실, 롤라, 드림시어터를 헷갈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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