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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탈출을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소설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독서 2025. 4. 21. 16:59
그리스어, 라틴어, 헤브라이나어 같은 고전을 가르치는 문두스(Mundus. 세계, 우주, 하늘 등을 뜻을 지닌 라틴어)라 불리는 그레고리우스의 삶을 뒤바뀌어 놓은 것은, 비가 내리는 날 출근 도중 카르헨펠트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붉은 외투를 입은 포르투갈의 여인을 제지한 후에 일어났다.
교실로 데리고 왔던 그녀가 수업 중에 홀연히 떠난 후 그는 평생 가지고 다녔던 가방을 교탁에 놓아둔 채 학교를 떠나 서점으로 간다. 그의 귀에 멜로디처럼 들린 그녀의 ‘포르투게스(Portugués)라는 말에 홀린 듯 서점으로 갔다. 서점에서 아마데우 드 푸라두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을 주인에게서 얻는다.
‘-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
그는 집으로 돌아와 어렵게 책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는 책을 한 문장씩 번역하며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학생 시절 그레고리우스가 황제의 명상록이 마치 자신에게 직접 쓴 글인 양 생각하며 읽을 때조차 알지 못했던 감각의 각성과 명료함을 이 포르투갈 사람은 인식의 예리함을 통해 그에게 일깨워 주었다.’
그는 짐을 싸 바로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는다. 리스본에 도착한 그레고리우스는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 푸라두의 삶의 궤적을 찾아 한 걸음씩 접근한다. 프라두가 독재자인 살라자르 관리인 후이 루이스 멩지스를 치료해 준 후 사람들에게 받았던 질시와 비난 속에서 고독한 삶을 살다가 살라자르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편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마데우를 기억하는 여동생과 동료인 주앙에사, 밀고자 조르지에, 끝내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애인 에스테파니아 에스피노자 등을 만나 그의 고뇌, 철학, 사랑, 언어의 내면 등에 대해 깊이 천착하게 된다.
그레고리우스는 아무데우 드 푸라두의 삶의 흔적을 찾으며 고독하고 외롭게 생활했던 자신에 대해 타인과의 소통, 사람을 향한 그리움, 내면의 고통, 언어가 가지는 힘 등을 이해하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익숙하지만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며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동경한다. 가보지 않은 곳, 내 영역이 아닌 다른 사람의 영역, 내가 하는 일이 아닌 타인의 일,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 그리고 내 삶의 아닌 다른 사람의 삶, 내 마음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 내 사랑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랑이 궁금하다. 내가 가지 않은 길, 내가 경험하지 못한 곳, 낯선 곳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낯설고 불안하지만, 소설에서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살게 된다.
소설에서 그레고리우스도 포르투갈 여인을 만난 후 갑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위스 로잔을 떠나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떠나 5주 동안 「언어의 연금술사」 저자인 푸라두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고향 골목을 다양한 각도와 세심한 시선으로 사진을 찍으며 비로소 자신이 세상에 동화하지 못하고 살았음을 알게 된다.
그는 아내 플로렌스와 소통하지 못했던 아픈 기억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 내가 지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네? 문두스, 그런 건 묻는 게 아니에요!” 왜 이런 일이 지금까지도 이렇게 아플까?’ 왜 20년, 30년이 지나도록 이 기억들을 털어내지 못할까?’
반복되는 익숙한 일상이 지겨운 사람은 그레고리우스처럼 무얼 찾아 떠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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