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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혜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에 대한 작은 사유 (853)
    독서 2025. 10. 8. 16:23

     

    외국에 사는 작가들의 시선

     

    한국계 미국인이나 캐나다인 등 외국 동포들이 부모의 나라 한국을 소재로 삼아 소설이나 영화를 제작하여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영화 미나리의 정이삭 작가 겸 감독, 데몬 헌터스의 매기 강 감독, 소설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 역시 한국인이 아닌 한국계 외국인입니다. 이들은 비록 외국에서 생활하지만, 뿌리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이 핏줄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 보여줍니다. 이처럼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을 쓴 김주혜 작가도 미국에서 거주하는 한국계 인사입니다. 이제는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좁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해외에서 한국인의 역사와 시대적 상황을 아우르는 작품을 만들며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그동안 국내 작가의 작품이 언어의 장벽 탓에 외국어로 번역되기 어려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외국어로 쓰인 한국 관련 작품이 역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시대적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서사

     

    소설은 역사성과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이 작품은 1918년부터 1964년까지 격동의 시기를 살아낸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조선이 일제에 침탈당해 근대사를 스스로 써 내려가지 못하고, 일본의 강제적인 통치 아래에서 당시 이 땅에 살았던 불행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이야기는 포수 남경수가 굶주리는 두 아이에게 줄 꿩이나 토끼를 잡으러 산에 갔다가, 표범이라 여겨 쫓던 짐승이 거대한 호랑이임을 깨닫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굶주림으로 눈밭에 쓰러진 남경수는 사냥을 나온 일본군 하야시 소좌와 야마다 대위 일행에게 구조됩니다. 이후 남경수는 호랑이에게 당할 뻔했던 일행들을 구해줍니다. 여기서 맺은 남경수와 야마다 대위의 인연은 소설 후반부로 이어져, 남경수의 아들 정호가 태평양 전쟁 막바지 징집 위기에 처했을 때 야마다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야마다는 정호가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도록 호의를 베풉니다.

     

    주인공 옥희는 열 살 때 기생 은실의 집으로 팔려 갔고, 그녀의 두 딸인 월향, 연화와 함께 사촌인 서울 기생 단이의 집으로 와서 기생이 됩니다. 정호는 옥희를 만난 뒤 그녀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한편, 인력거꾼 한철은 옥희의 단골 인력거꾼이 된 후 연인 관계로 발전합니다. 옥희는 한철을 애인으로, 정호를 친구로 생각합니다.

     

    옥희는 기생과 배우 활동으로 번 돈으로 한철의 대학 졸업까지 뒷바라지하고 그의 어머니와 두 동생의 생계까지 돕습니다. 그러나 한철은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직업을 얻자, 옥희를 육체적으로는 사랑하면서도 천한 신분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외면하고 버립니다. 한철은 "가족이 알면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걸. 내가 …… 그러니까 …… 그런 사람과 ……."라고 변명하며, 결국 자신이 모시는 사장의 딸과 결혼합니다. 이는 전형적인 위선자들의 행태라 할 수 있지만, 옥희는 끝내 그를 잊지 못합니다.

     

    한철이 근무하는 사장 김경수는 독립운동가 이명보의 친구이자 대지주의 아들입니다. 유학에서 돌아와 출판사와 자전거포를 운영합니다. 친구 이명보가 독립 자금을 요청하지만, 그는 거절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름뿐인 독립과 실질적인 번영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하겠나?" 또한, "예술가이니 오직 예술에만 마음을 쏟을 수밖에 없는 거지"라고 덧붙입니다. 김경수의 이러한 태도는 일제강점기 지식인, 특히 문학이나 예술을 하던 작가들 대다수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이른바 순수예술이라는 미명으로, 나라의 흥망이나 백성의 굶주림에는 무관심한 채 오직 자기만족을 위한 작품 활동에만 몰두했던 이기적인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약자를 외면했던 그들의 작품이 민족적 혹은 보편적 가치 측면에서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정호와 옥희, 그리고 주변 인물들

     

    정호는 옥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한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옥희의 곁을 떠납니다. 이후 다시 만났을 때도 옥희를 향한 연정보다는 친구의 어려움을 돕고자 하는 순수한 동정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서울로 온 정호는 거지의 대장이 되어 생활하다가, 부잣집 아들로 일본 유학 후 독립운동을 하는 이명보의 심복으로 들어가 본의 아니게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됩니다. 경성에서 활동이 어려워지자 상해로 건너간 정호는 조 동지(약간 모자란다고 생각)와 함께 일본 부총독을 사살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임무는 성공하지만, 정호 대신 조 동지가 체포되고 정호는 경성으로 돌아옵니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 물자 부족으로 경성에 사는 모든 사람이 생필품과 식량난을 겪을 때, 정호는 옥희가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른 것을 알고 식량을 구해주고는 미련 없이 발길을 돌립니다. 옥희가 한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옥희가 배우로 활동할 때, 이토 대좌가 분장실로 찾아와 관심을 보이며 성추행을 시도합니다. 옥희는 끝내 이토의 어깨를 물어뜯으며 저항합니다. 이토는 옥희를 강제로 범하거나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냥 돌아갑니다. 옥희에게 호감을 느꼈던 이토는 군에서 나와 사업가로 변신하여 고려청자 같은 값진 물건을 헐값에 사들여 재산을 불립니다. 일본의 패망을 인지한 이토는 일본 귀국을 준비하며, 떠나기 전날 옥희에게 현금 천 원과 고려청자 한 점을 주며 살아남으라고 합니다. 옥희가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하며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졌지만 출세한 한철은 옥희를 버렸습니다. 반면, 옥희가 거부했던 이토는 거금과 귀한 도자기를 건네며 옥희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원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월향은 평양에서 하야시에게 강제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채 동생 연화, 옥희와 함께 단이의 집으로 와서 출산하고 기생이 됩니다. 후에 미국 부영사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연화는 갑부 마 사장의 첩으로 들어갔다가 아편에 중독되어 가출했고, 옥희는 끝내 그녀를 찾지 못했습니다. 1945815일 해방일, 정호는 용산 판자촌 사창가에서 연화를 발견하여 옥희에게 알립니다. 5년 만에 만난 연화를 위해 옥희는 이토가 준 천 원 중 오백 원을 포주에게 주고 연화를 구해냅니다. 이후 미국에 있는 월향과 연락이 닿아 연화는 미국으로 떠납니다.

     

    마지막 생존과 '작은 땅의 야수들'의 의미

     

    1964, 정호는 공산주의 활동 혐의로 체포되어 결국 사형당하며 한 많은 생을 마감합니다. 경성에서 옥희의 어머니 역할을 했던 단이 역시 태평양 전쟁 말기 매독에 걸려 비참하게 죽음을 맞습니다.

     

    단이, 연화, 월향, 그리고 정호까지 모두 떠나보낸 옥희는 피폐해진 몸을 추스르고 집을 팔아 제주도로 향합니다. 제주에서 전라도 진도댁에 해녀 일을 배웁니다. 그러던 중 매일 남편에게 폭행당하던 진도댁이 아기를 옥희 집 문 앞에 버리고 제주도를 떠난 것을 알게 됩니다. 옥희가 처음으로 전복을 잡은 날, 전복 속에서 진주 한 알을 발견합니다. 이를 바라보며 옥희는 '정호가 나를 돌봐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저세상에 가서도 말이다. 그리고 나도 똑같은 방식으로 있을 거라는 것도. 삶을 계속 놓아주고 또 붙잡고 버티면서, 오직 바다에서 온 나의 일부만이 남을 때까지.‘

     

    소설의 제목 '작은 땅의 야수들'은 단순히 짐승만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토는 옥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에서는 그처럼 사나운 맹수가 없거든. 영토로 따지면 우리가 훨씬 더 큰 나라인데도 말이야. 이 작은 땅에서 어떻게 그리도 거대한 야수들이 번성할 수 있었는지 신비로울 따름이야."

     

    김주혜 작가 역시 이토의 말에서 제목이 나왔다고 귀띔합니다. 그러나 '야수들'은 단순히 짐승뿐 아니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맹렬한 삶의 투쟁을 아우르는 말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또한, 당시 독립운동의 주 무대였던 만주, 중국, 러시아까지를 포함하는 더 큰 의미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존자들에게 바치는 헌사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라는 암흑 속에서 질긴 잡초처럼 독립운동을 하거나, 악조건과 차별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생각됩니다. 비록 정치인들이 정치적인 실책으로 나라를 빼앗겼지만,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한 평민들은 일제가 이 땅에서 행하는 온갖 압박, 수탈, 차별,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이들은 야수처럼 맹렬하게, 어떤 이들은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아 민족의 핏줄과 정체성을 지켜낸 역사는 저항 정신과 자주정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숭고한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러한 정신을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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