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가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결과였다는 말을 듣는다.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세상사는 현실에서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런 사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문학작품이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일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리어왕〉은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늙은 리어왕은 세 명의 딸에게 영토를 나누어 준 후 편히 쉬고 싶어, 세 딸을 불러 자신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표현해 보라는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첫째 딸 고네릴. “저는 아버님을 자유로운 우주보다 사랑합니다.” 둘째 딸 리건. “세상의 어떠한 즐거움이 아버지를 향한 제 효심보다 나을 수가 있을까요?” 막내딸 코델리아 공주. “저는 전하를 의무 이상으로 사랑하지도, 덜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결혼을 하게 되면, 저를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의무의 절반을 바칠 것입니다. 제가 전하께 모두 드릴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코델리아 공주에게 하고 싶은 말. ※ ‘조금만 비굴하게 살면 세상을 쉽게 살 수 있는데…….’
이 말에 화가 난 리어왕은 코델리아 공주에게는 영토를 주지 않고 내쫓아 버린다. 코델리아 공주는 프랑 왕과 프랑스로 떠난다. 얼마 지나지 두 딸에게 외면당하고 학대받은 리어왕은 숲속을 방황하며 제정신을 잃고 광인이 된다.
아버지를 구하러 군대를 이끌고 온 코델리아 공주는 패한 후 포로가 된 후 아버지와 감옥에 갇힌다. 정신이 든 리어왕은 울부짖는다.
“오라! 우리는 감옥으로 갈 거야. 거기서 우리는 새장 속의 새들처럼 노래할 거야. 네가 나에게 축복을 빌 때, 나는 무릎을 꿇고 네 용서를 빌겠다. 우리는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듣고 웃을 거야.”
리어왕의 때늦은 후회이자 참회의 마음을 나타내는 순수한 사랑의 대화이다.
코델리아 공주는 교수형을 당한다. 리어왕은 죽코델리아 공주를 보며 통곡한다. 그중에서도 아버지로서 가장 가슴 아픈 절규!
“그녀를 보아라! 보아라, 그녀의 입술을. 저기 봐, 저기 봐.”
그리고 코델리아와 죽음을 애도하며 마지막을 나누는 대화!
“이것이 그녀의 끝이란 말인가? 왜 살아있는 개나 쥐는 살려두고, 너는 숨을 쉬지 못하는 거냐? 너는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세익스피어는 딸의 죽음을 슬퍼하는 리어왕의 마지막 절규마저 시적으로 표현하는 글을 보며 왜 그가 가장 위대한 작가인지 느끼게 해 주는 것 같다.
세익스피어는 〈리어왕〉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리어왕은 어리석은 판단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광야를 헤매는 신세가 되었고, 사랑하는 딸의 죽음까지 지켜보는 불행을 맞는다. 잘못된 판단에 대한 가혹한 대가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어리석음은 정의도, 도덕도 없는 부조리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리어왕의 마지막 희망인 코델리아의 비참한 죽음을 통해 독자들에게 세상은 정의로움이 아닌 부조리함이 지배하는 것이라는 경고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를 진실로 사랑했던 코델리아 공주의 죽음은 아버지의 어리석음에 대한 희생양으로, 선행이나 선한 마음도 세속적인 욕심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는 보상받을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리어왕은 가장 사랑했던 코델리아가 자신에 대한 달콤한 사랑의 언어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내쳤던 어리석음을 나중에 깨닫고 반성하고 후회하지만 그런 반성조차 무정한 세상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을 해주는 것 같다.
세상은 인간의 선한 의지나 희망대로 움직이지 않는 탐욕과 경쟁 속에서 어리석음이나 선함은 구원이 수단이 될 수 없고, 정의로움을 원하는 대로 가지 않는 불투명한 혼돈 속의 다툼이라는 것을,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작품의 제목 그대로 ‘비극’일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글로스터 백작의 “우리가 파리에게는 장난감인 것처럼 신들에게는 장난감이다. 신들은 우리를 죽일 때 재미를 느낀다.”라는 말속에 이 작품에 대한 의미가 함축되어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