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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 천자암 얼레지꽃그곳에 가면 2024. 3. 28. 14:10
선암사 뒷산으로 얼레지꽃을 보러 갔는데 한 포기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서 기왕 나선 김에 보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더 간절해서 천자암으로 갔다. 천자암도 간 지가 십 년이 넘은 듯하다. 천자암 가까이 가서 예전에 보았던 주자장에 차를 세우고 가파른 오솔길을 따라 오르니 경사가 심해서 숨이 찬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바위에 앉았더니 바로 앞에 작고 파란 꽃을 앙증스럽게 피운 현호색이 보인다. 조금 더 오르자 이번에는 민들레꽃과 비슷한 복수초가 노랗고 선명한 꽃을 피운 채 홀로 서 있다.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는 사람만 보라는 선물 같았다. (현호색) (복수초) 천자암 왼쪽 길로 걸어가며 얼레지꽃이 있는지 두리번 거렸는데 딱 한 포기 얼레지꽃이 있는데, 이미 시들어가고 있었다. 십여 년 전에 왔을 때는 주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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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얼레지꽃 대신 홍매화를 만나다그곳에 가면 2024. 3. 28. 13:49
봄이 오면 산과 들에 꽃이 피는데 누구나 좋아하는 꽃이 있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 길가의 민들레는 도시 길가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고, 조금만 허리를 굽히고 잠시 멈춰서서 골목 담장 밑을 보면 보라색 봄까치풀꽃도 볼 수 있다. 매화꽃을 보러 섬진강을 따라 광양 다압마을을 찾기도 하고. 벚꽃이 화사하게 피는 쌍계사나 진해까지 먼 길을 여행하기도 한다. 유채꽃, 수선화, 튤립꽃 등을 보려고 찾아가기도 한다. 얼레지꽃을 보러 선암사 뒷산으로 갔다. 십 년 하고도 한참 더 된 듯하다. 선암사로 옆길을 따라 송광사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는데 얼레지꽃이 한 포기도 보이지 않는다. 다른 쪽 좁은 길을 따라 걸어도 진달래꽃만 가끔 보이고 끝내 보이지 않는다. 사라진 선암사 얼레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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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이유단편 2024. 3. 26. 13:10
준호의 얼굴이 요즘 초췌하게 변해갔다. 이상했다. 몇 년이나 쫓아다니던 효린과 결혼한 지 일 년을 막 넘기고 있었다. 그토록 갈망하던 여자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준호의 얼굴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너 얼굴이 왜 그래? 무슨 고민 있어?” 준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손에 든 맥주잔만 들여다보며 만지작거렸다. “어디 아파?” “…… 아니.” “그럼 뭔데?” 준호는 반쯤 남은 맥주잔을 비우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혼해야겠다.” 내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뭐라고 했어?” “이혼.” 나는 너무 놀라서 말을 하지 못하고 멍한 상태로 준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야?”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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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부장의 풍금 소리단편 2024. 3. 22. 17:47
“현관 비밀번호가 뭐냐고? 잊어먹었다고?” “갑자기 물으니까 나도 생각이 안 나는 데 전화 끊고 조금만 기다려 핸드폰에 저장해 놓았으니까.” 전화를 끊고 오른손으로 턱을 고이고 잠깐 뭔가를 생각하더니 전화를 걸었다. “81750이야. 알았어.” “누구야?” “아내.” “현관 비밀번호가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고 해서……” “오 부장도 생각이 안 난 거야? 바로 안 알려주고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다고 하더니 생각이 난 거야?” “아니. 나도 잊어먹은 것처럼 하느라고.” “아니 뭔 소리야? 바로 알려주지 않고 왜 잊어먹은 척하는데?” “그게 그러니까. 응……, 내가 바로 알려주면 혹시라도 아내가 자기만 그런가 하고 실망할 것 같아서.” “아내를 배려해서 일부러 오 부장도 잊은 척하고 찾아서 알려준다고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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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일 선수 14회 우승에 이어 다시 제15회 춘란배 우승을 향해 발진새와 나무 2024. 3. 22. 12:14
제15회 춘란배가 시작되어 우리나라의 김명훈, 신민준, 박건호 선수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16강에 미리 진출한 신진서, 박정환, 변상일 선수가 대국을 시작했다. 작년 제14회 춘란배에서 변상일 선수가 처음으로 신진서를 무너뜨린 리쉬안하오 선수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도 신진서는 춘란배와 인연이 없는지 아니면 지난번 농심배에서 너무 힘든 싸움을 하고 우승한 후 지쳤는지 이번에도 다른 중국 선수들에 비하면 무명이나 다름없는 양카이원 선수에게 패하고 말았다. 많은 바둑팬들이 신진서 선수가 이번에도 결승에 진출하기를 바랐지만 세상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신진서 선수가 지고 8강에 박정환 선수와 변상일 선수가 올라 갔는데 8강과 4강에서 승리해서 우리 선수까지 우승을 겨룬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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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태양 ‘KSTAR’ 1억 도에서 48초 운전 세계신기록산문 2024. 3. 20. 17:01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리나라의 핵융합 기술인 인공태양 실험에서 KSTAR가 신기록을 달성했다고 한다. 인류는 지금 탄소배출 증가로 인해 온난화라는 재앙 앞에 서 있다. 온난화가 가져오는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선진국들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서 제품을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하고 있다. 유럽은 RE100(Renewable Energy 100)를 실천하기 위해 에너지를 태양열, 풍력 등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여기에 세계적인 기업들이 동참을 선언하고 앞으로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기업의 부품이나 제품을 구입하지 않겠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재생에너지 비율이 OECD 중 최하위에 있는데 우리 정부에서는 이에 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앞으로 경제와 산업에서 RE100 최대의 화두가 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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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시. 화암사와 화엄사시 2024. 3. 16. 10:38
화암사, 내 사랑 안도현 인간세(人間世)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 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 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바람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음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마을에서 먼저 와 있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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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운주사의 천불천탑의 전설과 오늘그곳에 가면 2024. 3. 14. 16:23
우리나라에서 가장 특색이 있는 절을 꼽으라고 하면 화순의 운주사를 들 수 있다. 운주사에 들어서면 좌측으로 평지에 석불과 탑이 중점적으로 늘어서 있고, 우측 산과 비탈에도 탑과 석불을 볼 수 있다. 절 앞에서 왼쪽 산으로 200여 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가장 큰 10여 미터나 되는 와불을 볼 수 있다. 운주사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은 다른 절에서 본 균형이 잘 잡힌 인자한 모습이 아니다. 눈, 코, 입 등이 균형이 맞지 않고 추상이거나, 야수파의 그림처럼 변형된 것처럼 보이는 못생긴 얼굴을 하고 서 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누가, 왜, 이렇게 못생긴 불상을 만들었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어느 것도 딱히 그렇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우선 불상하면 위엄이 있고, 인자하고, 균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