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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엄사의 예불 모습과 절의 풍경
    산문 2019. 5. 2. 11:08



    화엄사의 예불 모습과 절의 풍경

     

        

               노을을 감싸 안은 숲은 부드럽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연두색이 검푸르게 변하기 시작하는 426일이다. 연두색 나무들에 옅은 어둠이 깃들기 직전인데 빗방울이 떨어질 듯 구름이 산사를 덮는다. 평일 산사의 저녁은 고즈넉하고 침묵이 깊다.

    절 안과 밖이 온통 연등이 매달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구도와 구원의 길은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 절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도 삶이고, 속세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도 삶일 텐데 삶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탑도, 석등도, 건물도, 나무도 부동의 자세로 서서 영겁의 참선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데 그 속에 서성이는 내 모습이 한없이 어설프고 초라해 보인다. 대웅전 앞마당에 감도는 서늘한 기운이 마치 온갖 죄를 저지르며 사는 속인에게 참회하라는 무언의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6시 30분쯤 되었을까?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법고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스님 셋, 그 중 한 스님이 법고를 두드린다. 법고를 두드리기 시작하자 낮고 큰 울림이 절의 고요한 사위를 흔든다. 묵직하고 심오한 울림으로 퍼지며 화엄사 경내와 지리산 자락을 깨우는 반향들이 소용돌이친다. 모든 축생들을 위로한다는 법고소리가 퍼진다. 마치 고막 바로 아래에서 일어나는 근원적인 생명의 소리처럼 들린다. 법고를 두드릴 때마다 사람들에게 학대받고, 사육되고, 도살되어지는 짐승들의 울부짖음을 달래는 장중하면서도 부드럽기 그지없다. 속세의 인간들이 축생들에게 저지른 온갖 악행을 사죄하고 위로하는 소리. 새벽과 저녁 짐승들의 영혼들에게 영면하라는 사죄를 스님들이 속세의 인간들의 대신하고 있다. .


                                  

    (저녁예불을 알리는 법고 연주 모습)



       이어서 운판의 높고 센 소리가 저녁 공기를 가른다. 숲에서 사는 새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소리다.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는 짐승들이지만 이들에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뇌가 있고 아픔이 있다는 부처의 마음이 새벽과 저녁마다 운판을 울려 새들을 위로해 주는가 보다. 연이어 목어를 빠르고 강하게 두드리다가 잘고 여리게 두드린다. 고기모양을 한 목어 속에서 건조하고 딱딱한 소리가 퍼지며 물에 사는 고기들의 넋을 위로한다. 바다와 강, 호수와 계곡에 사는 모든 물고기들에게 부처의 자비로움을 전하는 스님들의 전언이다. 목어의 소리가 여려지는가 싶더니, 종루에서 첫 타종소리가 들린다. 범종소리가 나는 곳으로 서둘러 발길을 옮긴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문명의 이기들에서 나는 온갖 잡스러운 소리에 천지를 진동시키는 범종소리! 인간의 영혼을 뒤흔드는 소리. 범종소리가 내 몸을 관통하여 온간 속진과 잡스러움을 씻어버리는 듯하다. 산사의 저녁은 인간들의 잡다한 소리가 들리지 않는 깊은 침묵과 묵상에 잠겼는데, 범종소리는 절에 사는 사람들의 영혼의 향기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저녁예불을 알리는 운판과 목어 연주 모습)




                                  

    (저녁예불을 알리는 범종 타종 모습)



       인간이 죽어 지옥에 이르는 나락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고, 인간들이 가게 된다는 지옥이 고통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지만 죄지은 인간들을 위해 울리는 서른세 번의 범종소리에 숙연한 채 눈을 감아본다. 지옥에서 고통 받는 인간들에게 범종소리는 구원과 희망의 소리이고, 끝없이 이어지는 지옥의 온갖 형벌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는 부처의 부드러운 손길이 아닐까?

     

       스님들이 저녁 예불송이 들린다. 화엄사 경내의 텅 빈 공간을 흔드는 예불소리. 청빈과 참선, 무욕과 고행으로 다져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 쌓아온 연륜과 불심의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예불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이어진다. 예불소리는 대웅전과 각황전의 기왓골을 스치고, 불 없는 석등을 감돌고, 석탑을 받치고 있는 사자상 언저리를 맴돌더니, 대웅전 앞마당으로 다시 이어지며 절을 찾은 중생들이 남겨놓은 삶의 부끄러운 찌꺼기들을 쓸어내리며 어둠 속에 색()과 공()의 경계를 허무는 탈속의 염원이 충만하다. 어쩌면 온갖 번뇌를 훌훌 털어 버리고 삶과 죽음이 여일한 경지를 이루려는 스님들의 예불소리 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속세와 인연을 끝내고 고행과 참선, 묵상을 통하여 마음속에 있다는 부처를 일깨우는 불자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소리일 지도.

    예불소리에 담긴 깨달음을 갈망하는 젊은 승려의 고뇌와 깨달음에 경지에 이른 고승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예불소리가 홍진 속에 묻혀 사는 내게는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듯한 충격적인 소리로 들린다.


       더 서 있다가는 온 몸의 기운이 소진될 것만 같아서 끝까지 듣지 못하고 슬며시 대웅전 마당을 떠난다. 어둠에 내리는 절을 떠나며 백년을 살아도 중생들의 고뇌는 풀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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