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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천사들
2020년의 봄은 가혹하다. 여느 봄날과 다름없이 길가에 키 작은 민들레가 피고, 나지막한 산에 진달래도 피고, 산수유와 매화가 피었다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혹시나 다른 사람에게서 코로나19에 감염될까봐 거리를 두고 있다.
전장에서 제일 무서운 적은 분명이 어디에 있는데 모습을 보이지 않는 적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보이지 않는 무서운 적들에게 노출된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불안, 초조, 답답함으로 하루가 한 달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길어지는 바이러스의 무차별적 공격으로 확진자가 전 세계적으로 50만 명을 넘었고,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나라마다 의료체계가 무너지며 지역을 봉쇄하거나 외출이나 모임을 금지하는 비상조치가 내려지고 있다.
신이 있을까?
천사가 있을까?
귀신이 있을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까닭은 뭔가 기적이 일어나 내 삶에 반전이 일어났으면 하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지금 그런 천사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코로나19가 무서워 서로가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외출, 모임, 외식, 공연 등에 가는 걸 삼가고 동선을 최소화하고 있다. 코로나19의 무서운 감염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렇지만 코로나19에 걸린 확진자의 손을 잡아주고, 마음을 다독이며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주사를 놓아주고,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도 해 주기 어려운 일들이다.
2월 22일 SBS의 ‘일요 스페셜’에서 ‘코로나19 최전선에서-대유행을 저지하라’를 시청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환자들 곁에서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습이 어떤 드라마보다 감동을 주었다. 헌신적인 노력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부족해서 사투를 벌인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도 잠시 틈이 나자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간호사의 모습, 평범한 어머니, 아내, 부인의 역할을 미루어두고 환자를 위해 전력을 다하는 사람들.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는데 미처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환자가 온다는 말에 다시 방호복을 입는 모습을 보다가 흘린 눈물이었다. 얼굴에 반창고를 붙인 채 활짝 웃는 모습, 무겁고 답답해 보이는 방호복을 입고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모습.
천사들!
“천사가 어디에 사느냐?”고 묻는다면
“지금 대구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다.” 고 주저하지 않고 말하겠다.
“당신들은 살아있는 진정한 천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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