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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르스와 소설 1
    산문 2015. 6. 17. 17:37

     

    28에 담긴 길고 깊은 아픔

     

     

      우리나라는 지금 메르스라는 중동에서 건너온 바이러스로 인해 날마다 환자와 격리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사망자도 늘어나고 있어 국민들에게 불안과 걱정을 안겨주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전염병이 번져 어떻게 손을 써볼 수도 없는 상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과학이나 의학기술 그리고 전문화된 병원이 적었던 과거라서 전염병에 의해서 죽은 사람들이 더 많았겠지만 지금의 메르스 사태는 의학과 의료시설이 최첨단화 되었다는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의 자부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막대한 예산과 잘 조직되어진 정부조직 아래서 벌어지는 일이라서 더 충격적이고 믿고 싶지 않지만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이런 주제를 다룬 소설들이 읽을 때는 현실이 아닌 허구로 생각되었지만 이제 그냥 허구가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물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소설을 다시 되돌보며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전염되는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를 들여다보는 일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불행에 대한 성찰이고 반성이 되지 않을까. 이런 문제를 다룬 소설 중 먼저 정유정의 28이라는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본다.

      처음 책을 받아보고 28이라는 수에 갇혔다. 먼저 읽었던 7년의 밤이라는 제목과 연관시켜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생각을 더듬어보아도 잡히는 게 없었다. 새벽 예불에서 치는 28번의 범종소리가 담고 있는 욕계, 육계, 색계, 무색계의 의미, 주역에서 28이라는 수를 뽑으면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소식은 뜻밖의 발원지로부터 당신에게 온다는 의미는 아닐까. 7년의 밤7년이라는 세월이었듯이, 28이 단지 28일이라는 시간의 흐름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작가는 28의 이야기는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돼지를 생매장하는 장면에서 시놉시스(소설의 개요)를 썼다고 했다. 작가의 말대로 구제역의 한 축과 5.18이라는 또 하나의 축에 개와 인간 비극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고 생각했다. 구제역의 자리에 개에서 발생한 인수공통 전염병이 있고, 광주의 자리에 화양이라는 두 축을 연결한 씨줄과 날줄에 사람들의 비극이 촘촘하게 엮여있다는 가정을 하며 읽었다.

     

      소설을 읽으며 누구나 5.18이 연상되었을 것이다. 화양에 대한 봉쇄와 화양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사살하는 군인, 생필품이나 약품에 대한 공급 중단에서 느껴지는 광주의 연상. 그리고 구제역의 망령이 되살아난 동물 학살 구덩이. 광주와 화양의 다른 점이 있다면 광주에는 있었던 시민의식이 화양에는 없음으로 인해서 방화, 강도, 도둑, 폭력, 살인 그리고 강간 등이 일어나 인수공통 전염병이 번진 공포의 도시를 더욱 처참한 아비규환으로 만든다. 무차별적이고 빠르게 번지는 전염병과 사투를 벌이는 도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약탈자의 악행은 약한 사람들에게만 번지는 또 다른 공포의 전염병이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서사구조에서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는 의미가 없다. 그만두어도 책임을 물을 사람도 없고 그럴 당위도 없이 끝까지 사람들을 구하는 소방대원 기준. 그의 어린 아이는 전염병으로, 그의 아내는 사람들이 버린 개들에게 물려 처참하게 죽고, 전염병으로 쓰러져가는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돌보며 기적적으로 감염되지 않고 살아남은 수진, 그녀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그녀는 개들처럼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냥감을 찾던 놈들에게 번갈아가며, 소설에서의 표현대로 화장실 드나들 듯 수진의 몸을 유린당한 채 결국 스스로 무너져 군인들의 총에 사살되고, 기준은 아내의 죽음과 무관한 개 스타가 아내를 죽였다고 판단하고 스타의 목을 도끼로 쳐 죽이고, 재영이 살려준 개 링고는 결국 재영의 목에 이빨을 박은 채 주환의 총에 맞아 재영과 함께 최후를 맞는다.

    신문기자 윤주. 무책임한 기사로 인하여 재영을 망하게 하고 개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 시작되게 한 인물이다. 구덩이에 산 채로 묻는 개들을 목격하고 뼈저린 후회와 재영에 대한 진실을 알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그녀는 결국 그의 무덤에 장미꽃 한 다발을 올려놓고 뒤돌아서며 온몸의 비통과 슬픔을 담아 하는 말.

      “나 여기 있어.” 에 담긴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함축적 의미. 결국 살아남은 그녀와 기준은 평생토록 이 비극적 서사의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그게 살아남은 자들의 고뇌의 삶이고 운명일 걸 어쩌랴.

     

      이 이야기에서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인 동해. 마지막까지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책임감 강한 박남철의 아들. 하지만 박남철도 자식이라는 블랙홀에서는 어쩔 수 없는 승자독식의 사랑법을 벗어날 수 없었다. 부부는 공부 못하는 아들 동해를 홀대와 무관심으로 대하고, 결국 동해는 부모와 형제에 대한 증오심으로 별종이 되어버린 인물. 그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대리 보복을 하고, 남철이 귀여워하는 개를 한 마리씩 살해하는 싸이코패스로 전락하게 된다. 결국 정신병원, , 재영의 드림랜드에 불을 질러 애먼 사람과 어머니를 살해하고 결국 아버지까지 살해한 후 재영을 죽이기 위해 집요한 복수심으로 살아남는 인격장애자. 그도 가해자이며 피해자에 지나지 않았다. 과연 동해는 나쁜 놈인가. 그가 그렇게 변한 것은 순전히 그만의 책임인가.

      제 스스로를 파괴하고 주변사람을 파괴하는 무서운 바이러스 같은 존재는 누가 만들어내는가. 지금 깔끔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레스토랑에 앉아 스테이크에 와인을 곁들여 우아하게 식사를 하거나, 거리마다 넘치는 한우전문점에서 부위별 쇠고기에 소주를 곁들여 맛있게 식사하는 문명인들. 살려고 발버둥치는 가축들의 숨통을 끊어 목을 자르고, 다리를 자르고, 혀를 자르고, 내장을 꺼내 식탁에 올리고, 그걸 즐기는 사람들의 내면에 혀가 뽑히고, 다리가 잘리고, 내장이 꺼내진 동물들에게 눈곱만큼의 연민을 보낸 적이 없다면 당신과 나의 내면에는 동해의 악령이 하나씩 들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를 죽이기 위한 구덩이와 고립된 화양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없다. 화양의 오염된 구덩이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향해 총구를 겨눈 채 하늘에서는 헬리콥터를 띄워 감사하며 이를 벗어나려고 하면 무자비하게 사살하는 국가권력. 만약 대통령과 국회의원 그리고 고위 관료들의 가족들이 거기에 있었다면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떤 꼼수를 썼을지 상상해 보자. 이 소설에는 그 부분은 없다. 이건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게 아닐까.

      소설은 인간 삶의 모습을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없다. 결국 인간과 인간, 인간과 주변 동물이나 환경과의 이야기이다. 어떤 소설보다도 비극적인 인간들의 이야기. 말초신경까지 떨리는 분노로 읽어야하는 살아있는 문체로 서술하는 작가의 글쓰기 능력은 경이롭다. 그녀는 사회와 인간성에 대하여 약한 곳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사정없이 콕콕 찔려대며 읽은 사람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동해의 부모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당신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당신은 동해와 다른 착한 인간인가?”

     

      「28의 서사가 내가 원하는 대로 혹은 비슷하게 가지 않아서 실망하고 안타까웠을까. 죽지 않아야 할 사람이, 꼭 살아남아서 세상에 필요한 헌신과 사랑을 줄 사람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서 비통했을까. 그렇다. 화양을 고립시키고 고사시킨 사람들, 거리를 쫓겨난 개떼처럼 떠들며 폭력과 강간을 자행한 인간들은 왜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악의 씨앗으로 남는가? 작가는 독자에게 그런 친절을 베풀지 않았을까. 시와 소설에서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받은 로버트 펜 워런은 이렇게 말했다.

        ‘소설은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주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소설이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것들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이 소설은 우리가 원하는 않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인간이 사는 세상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가지 않는다. 그것이 삶의 서사이이며 본질이고 실체인 것을 어찌하랴.

     

      「28은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폭력과 잔악성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와 반성으로 사회적, 정치적인 실체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작품이다. 더불어 동해라는 폭력이 문명을 가장한 현대인으로 사는 내 안에 어떤 식으로 변종된 존재로 꿈틀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삶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내 자신에 대한 의문을 던져보는 소설로 읽으면 좋지 않을까.

      '문제는 타인이 아닌 늘 내 안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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