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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오후 9시 세월호가 인천항에서 목적지인 제주항으로 출항했다. 이 배에는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교사 14명, 일반인 108명, 승무원 29명 총 476명이 타고 있었다. 배가 진도 앞바다에 이른 2014년 4월 16일 아침 8시 48분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했다.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자 8시 52분 소방본부에 최초 신고가 접수되었다. 이후 구조 과정은 모든 국민들이 아는 바와 같이 대형 참사로 끝났고 말았다.
단원고 학생 250명 비롯하여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민들은 처음에는 경악과 슬픔을 느꼈고 나중에는 선원, 해경 그리고 정부를 향한 분노로 바뀌고 말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 그리고 해수부, 안행부의 무능은 국민을 실망과 집단 우울증에 빠뜨렸다. 컨트럴 타워 핑퐁 게임을 하더니 나중에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국민을 무시하고 질책하더니 결국에는 좌파 빨갱이라는 극한 말까지 쏟아내는 도저히 이해할 수 태도를 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세월호가 침몰한 지 1073일째 되는 새벽 3시 45분경 세월호가 다시 물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3년 동안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바다를 바라보며 자식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엄마 아빠의 품으로 딸과 아들들이 돌아왔다(9명이 배 안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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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세월호
1078일째 되는 날 팽목항을 찾아갔다. 분향소에 걸린 사진들을 보며 참배를 할 때 왈칵 눈물이 솟았다. 너무 예쁘고 당당한 얼굴들.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팽목항에는 3년 동안 세월에 낡고 바랜 리본이 펄럭이지만 그 속에 담긴 간절한 염원은 아직도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세월호가 목포에 도착하면 9명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세월호의 침몰 원인도 한점 의혹없이 밝혀져서
다시는 이 땅에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팽목항 부두를 걸으며 염원했다.
세월호가 왜 침몰했을까?
과적 때문에
무리한 방향 전환 때문에
구조 변경 때문에
다른 물체와 충돌로 인해서?
그리고 더욱 알 수 없는 의문?
선원들은 탈출하면서
해경은 가까이 있으면서
왜 아이들은 탈출하라고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