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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온 세월호
    산문 2017. 4. 3. 17:45


       팽목항을 찾아가는 길은 멀었다. 200킬로미터가 채 안 되는 길이었지만 2014416일 세월호가 침몰하고 1078일째가 되는 날에야 팽목항으로 향했다. 지리적으로는 그리 멀지 않지만 마음의 거리는 멀고 아득했다. 길가에는 매화꽃, 목련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들을 기다리는 가족과 사람들의 슬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나는 무심한 꽃들은 잔인한 4월을 향해 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고통은 사람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듯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팽목항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부두에 이르기 전 오른쪽으로 주차장이 보인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문은 없었지만 나는 마음의 빗장을 걷어내야 했다. 일상의 편안한 마음인 채 팽목항으로 들어서기에는 너무 슬픈 곳이었다. 누군들 숙연하지 않은 마음으로 여기에 들어설 수 있겠는가. 차갑고 어두운 세월호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숨을 거둔 채 여기 팽목항으로 돌아올 때 부모와 가족을 처절하게 오열하게 만들었던 슬픈 곳. 특히 단원고 학생들이 돌아올 때마다 오열하는 사람은 가족만이 아니었다. 자식을 기르는 모든 국민들 역시 눈물을 흘리며 학생들을 맞았다. 침통하고 가슴 아팠던 사연들을 간직한 채 또 다른 이별을 위해 돌아온 아이들. 3년이 지났지만 누군들 팽목항으로 들어서며 온전한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볼 수 있으랴

     

       들뜨고 신명나는 수학여행 길에 갑자기 침몰하기 시작한 세월호.


       “살려주세요.”라는 첫 신고 전화를 받은 후 어른들은 아이들을 살려내지 못한 채 배가 침몰하는 장면을 보며 피눈물을 쏟았다. 그때 우리가 잃은 건 정부에 대한 신뢰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윤리적 판단을 하며 살아가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믿음도 잃었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서 살면 행복한 삶이 될 것이라는 보편적인 믿음도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고 말았다. 괜찮은 부모이고 어른이라는 믿음이 깨지며 무기력하고 허약한 부모이고 어른일 뿐이라는 실상을 쓰리고 아프게 느껴야만 했다

      

       많은 날들이 흘러 3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에야 나는 팽목항 분향소를 찾아 향을 피운 후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눈을 뜨고 아이들의 바라보려니 눈물만 나오는 게 아니라 목이 울컥하며 감정이 북받친다. 소리 내어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이 땅에 사는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데 대한 참회를 하고 싶다.


       ‘너희들이 살려달라며 애타게 기다렸을 어른들은 너무도 무기력했고 허약했다. 그리고 무능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라만보고 있었으니 그 죄를 어찌 용서 받을 수 있겠느냐. 어찌 뻔뻔하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오직 슬픔과 고통으로 자책하며 너희들 앞에 무릎을 꿇을 뿐이다. 용서하지 마라. 절대로 용서하지 마라. 못난 어른들을 사랑하지도 마라. 다만 너희들이 다시 태어나거든 부디 우리가 겪은 슬픔과 분노를 다시는 겪지 않도록 제대로 된 나라에서 태어나 행복하게 살기를 빌 뿐이다. 부디 편안히 잠들기를 기도한다.’ 

     

       205명의 학생들이 배가 침몰하고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배가 어른들이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채,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믿다가 꽃잎처럼 지고 말았다. 꽃처럼 예쁜 아이들, 봄풀처럼 건강한 아이들, 쪽빛 하늘처럼 푸른 아이들이었다. 무슨 말을 한다고 한들 아이들의 모습을 재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다만 이 땅에 사는 부모들은 그 날의 참사를 고통으로 각인한 채 살아가야 한다.


      아이들을 삼킨 바다와  가까운 팽목항에는 구름이 드리우고 위선적인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겉으로는 따뜻하지만 속에는 차가움을 감춘 봄바람이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속은 얼음처럼 차가운 사람을 닮았다. 위선적인 봄바람이 흙먼지 풀썩이는 분향소 컨테이너박스 주변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음산하고 침울한 하늘 냉찬 바람이 이는 분향소 마당에서 나는 무기력하게 아이들을 보낸 한 어른으로서 자책을 하며 서 있다. 3년 동안 사람들이 흘린 눈물과 슬픔 그리고 아픔 속에 세월호가 지금 저기 바다 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072일 만에 바다 속에서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되돌아온 세월호가사람들에게 그날의 아픔과 안타까운 일들을 다시 되살려내고 있다.


           2014416!

      그날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종교적 신념처럼 성장이라는 신기루를 쫓으며 외적인 모습은 변화했지만 우리의 내부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허점투성인 채로 부실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일상에서 보이는 화려한 외모와 부실한 내면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허상은 언젠가는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도 수많은 참사가 이어졌지만 그때마다 철저한 원인 규명과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그 순간을 모면하고 살았다. 때문에 정부라는 조직체는 있었지만 원활하고 빈틈없는 시스템의 건전성을 갖추지 못한 채 조악하게 굴러가는 나라. 결국 언젠가는 겪어야만 했던 참사가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을 태운 세월호에서 다시 터지고 말았다.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온 세월호가 바로 우리의 실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는 나라에 살 수 있을까. 이제라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참사의 이면에 숨어있는 사실들이 3년 만에 떠오른 세월호의 모습처럼 처참하다고 할지라도. 그 길만이 세월호에 희생된 어린 학생들과 가족 그리고 고통과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길이다. 또한 앞으로 이런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길이다

     

       팽목항 부두에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귀환을 바라는 수많은 리본과 현수막이 3년이라는 세월 속에 헤지고 닳아가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간절한 소망은 오늘도 바다 저쪽 세월호에 전달되고 있었다. 팽목항 부두에 직접 리본을 달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진실한 기도는 하늘에 닿아 먼 길 팽목항으로 전해져 왔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슬픈 팽목항 부두에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영면을 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는 말, 오마바 전 미국대통령의 희생당한 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의 두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는 말도 되돌아온 세월호에 전해졌을 것이다. 우리의 대통령에게서 들을 수 없었던 진솔한 위로의 말이…….

     

       

     

            작은 거인 김재동 MC와 시시 IN의 주진우 기자가 미수습자 가족이 생활하고 있는 컨테이너 박스 사이에 서 있는 모습.

      

          가족을 위로하려고 팽목항에 내려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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