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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단편소설 「화장」새와 나무 2023. 5. 19. 12:24
화자인 오상무의 아내가 2년 동안 뇌종양으로 앓다가
죽었다. 건강했던 아내가 뼈와 가죽만 남은 채 죽어갈
때까지 과정을 바라보는, 나는 통증으로 신음하는 아내
못지않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다. 나는 전립선염으로 스스로 오줌을 배설하지
못하고 이비인후과에 가서 도뇨관을 삽입해서 해결해야
한다.
‘간호사가 성기 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성기 끝 구멍을 두
손가락으로 벌렸다. 간호사가 그 구멍 안으로 긴 도뇨관을
밀어 넣었다. 도뇨관은 한없이 몸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상무)는 아내의 처절한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방관
자다. 죽음을 앞두고 죽어가는 환자를 둔 보호자들이
그렇듯이.
‘아내는 발작적인 두통을 호소하며 먹던 것을 뱉어냈고,
시퍼런 위액까지 토해 놓고 정신을 잃곤 했다.’
‘아내가 두통 발작으로 시트를 차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
을 때도, 나는 아내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고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수술이 끝나고 아내가 회복실에서 병실로 실려
왔을 때, 나는 아내가 이제 그만 죽기를 바랐다. 그것만이
나의 사랑이며 성실성일 것이었다. 아내는 삭정이처럼 드러난
뼈대로 다만 숨을 쉬고 있었다,’
오상무는 아내가 사람 아니 여성을 상실한 채 뼈와 가죽만
남은 채 먹는 것조차 불가능한 참혹한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싱싱한 생명체, 여성에게 마음이 꽂힌다.
‘추은주(秋殷周).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
‘그리고 당신의 몸속 실핏줄 속을 흐르는 피의 온도와
당신의 체액에 젖은 살들의 질감을 생각했습니다. 내 마음
속에서, 당신의 살들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풍문과도
같았습니다.’
오상무는 병들어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의
모습과 대비되는 건강한 추은주의 몸을 관음하며
범했을 것이다. 그것은 간통이 아니라 죽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아내와 오줌조차 스스로 배설하지 못하는
자신에 관한 절망에서 오는 피난처였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며 최소한의 생리현상 만으로 연명하고 있는 아내를
2년 동안 간호하며 마음속으로 추은주를
사랑하는 오상무에게 나는 아니라며 돌을 던질 수 있는
남편이 있을까?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는 소설보다 좀 더
현실적인, 솔직한 행동으로 오상무는 추은주와 몸을 섞는다.
죽어가는 아내와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는 젊은 여자 추은주
사이에서 방황하고 고뇌하는 남편의 모습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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