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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부르는 재앙 적조 만성리 바닷가에 서서 휘어진 해안을 따라 출렁이는 파도와 그 파도가 끊임없이 쌓아올리는 모래톱을 바라보고 있다. 며칠 전까지 원색의 물결로 넘치던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다 철거하지 못한 천막이며 의자들이 마지막으로 옮겨지고 있다. 해안 모..
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 6.25가 휩쓸고 간 이 땅의 농촌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 중에서 배고픈보다 긴박하고 절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선조들은 ‘이식위천’(以食爲天), 즉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 (독립된 지성은 존재하는가 ..
아내 길들이기 어린 시절 집에서 소를 키웠다. 지금은 소가 건강을 위한 우유나 식탁에 오르는 고기를 생산하는데 치중하고 있지만, 예전의 소는 주로 사람의 노동력을 대신하는 동력원으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주로 암소를 길러 논과 밭도 갈고, 달구지를 이용하여 짐을 운반하는데 ..
개 귀신 예나 지금이나 복날이 되면 남자들은 보신탕집으로 가서 땀을 흘리며 개고기 먹는 것을 즐긴다. 개는 사람과 한솥밥을 먹고 자라서인지 다른 짐승에 비하여 유난히 사람을 잘 따르고 죽을 때까지 주인에게 충성을 하는 가축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몸보신을 하기 위하여 충성스런 ..
미국 분 미국 사람 미국 놈 「미국 분 미국 사람 미국 놈」이라는 베스트셀러가 있었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하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미국인의 생활에 대하여 적나라하게 쓴 책이었다. 그 책에는 미국인의 장점과 단점이 자신의 경험을 살려 세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 책을 읽고 우리와 ..
매향리 1618년 광해군(10년)이 왕으로 있을 때 명나라가 누르하치를 친다고 원병을 요구했다. 그 요구의 명목은 재조지은(再造之恩)이었다. 즉 임진왜란 때 조선에 대하여 베푼 은혜를 갚으라는 것이었다.(광해군. 한명기. 196쪽) 할 수 없이 강홍립을 대장으로 하여 1만 명의 원군을 파견하..
저승길 밝히는 등불(봉선화) 딸아이가 손톱에 매니큐어를 빨갛게 칠하고 있어서, 왜 칠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했단다. 남이 하니까 덩달아서 했다는 말로 들린다. 길거리에서 젊은이들의 유행과 패션은 개성을 상실한 모방 충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원래 유행이라는 것은 흐..
묵은 묘지가 있는 곳 바닥에는 까치수염꽃이 하얀 포말처럼 무리 지어 일어서고 새벽빛으로 전율하는 활엽수 찰진 잎들이 어둠이 뒤틀리는 가장자리 수빙(樹氷) 같은 물방울이 뚝뚝 지는 알몸 타래난초에 기웃한 묵은 묘지가 있는 곳에 다다르면 산옥잠화가 음지에서 힘들게 피고 나뭇..